포스트 코로나 시대 AI와 로봇, 과학을 말한다 –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특별 인터뷰

interviewer 천영준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데이터 평론가
photographer 김주한 디자이너

유비테크 세계1위 기술의 비밀
중국 정부가 로봇에 선행투자
한국은 소프트·콘텐츠에 집중을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77·현 제이미디에이터 회장)은 한국 ICT 업계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그가 밟아 온 궤적은 독보적이다. 미국 유학 후 한국과학원(KAIST) 초기 멤버로 참여해 과학기술계의 연구 기반을 만들었고, 30대 중반부터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대우조선 부사장, 대우전자 회장 등산 업계의 중심 리더로 활약했다. 배 전 장관은 최근 인공지능 로봇 회사인 제이미디에이터의 회장으로 취임해 AI 콘텐츠 연구개발에 도전했다. 제이미디에이터는 30초 만에 50명의 발열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방역 로봇’, 어린이 코딩 교육용 로봇 등 언택트 시대의 핵심 상품들을 계속 마케팅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최전선에 뛰어든 배순훈 전 장관을 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상암동 DMC첨단산업센터에서 만났다.

–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가 20대 후반 때 회장님의 MIT 박사논문이라고 알고 있 습니다. 배경이 궁금합니다.

“특수한 여건에서 성립하는 미분방정식을 정리하고, 그 연산 과정을 컴퓨터 를 바탕으로 처리하게 하는 내 연구는 MIT에서 최초(1969년 박사논문)였습니다. 논문을 낸지 6개월 뒤에 폴 새뮤얼슨(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교수의 제자인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이라는 재무학자가 받은 박사논문이 공교롭게도 수학적으로 매우 비슷했습니다. 머튼은 옵션 가격과 관련된 연구를 한것이고, 나는 유체-유동량과 압력을 계산한 것이므로 연구 대상은 다르지만요. 그 시대가 지나고 나니 컴퓨터 기반의 계산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통틀어 유행하더군요. 머튼도 그 뒤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월스트리트가 ‘퀀트’(Quant : 수리 계산을 바탕으로 시장 동향을 예측하고 투자하도록 하는 모델) 중심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제 기여가 초기 인공지능 연구에 꽤 큰 편으로 평가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컴퓨터를 바탕으로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과정을 공학적으로 풀어낸 것이니까요.”

– 인공지능 분야의 원로이신데, 요즘 한국의 관련 분야 전략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제가 학계, 업계, 관계 등에서 두루두루 일해 보니 전략을 짠 대로 일이 안 됩니다.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문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일이 되는 것이죠. 제가 김대중 정부 초기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입각할 당시 수립하고 실행했던 정책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분께서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내려던 것들의 일환입니다.”

서울 상암동 사무실에서 대담 중인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오른쪽)과 천영준 데이터평론가

김대중•김종필•박태준, 초고속 인터넷망 지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ICT 수장들이 경험하기 힘든 일이라고도 합니다.

“하루는 청와대에 들어가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려야 할까요?’ 김 전 대통령이 웃으면서 그러시더군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배 장관이 전문가니 알아서 하시오.’ 당시 대통령이 앨빈 토플러의 지식 정보화 개념에 푹 빠져 계신 상태였죠. 그래서 내가 말씀드렸습니다. ‘한국이 국제 데이터 협회(IDC) 기준으로 20위(98년 당시)권인데 5위로 끌어 올려 드리겠습니다.’ IMF 환란으로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는데 대통령의 무한 신뢰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자민련 소속의 김종필 총리와 박태준 총재까지 불러서 무조건 도와주라고도 당부하시더군요. 제가 국제 데이터 협회의 평가 사례들을 봤는데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면 정보화 인프라 점수가 큰 폭으로 개선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렇게 ADSL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ADSL: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 기존 가입자 회선인 구리 동선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초고속 전 송을 가능케 하는 기술의 일종)

– 당시 국내에 없던 ADSL 관련 기술을 확산시키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내가 대우전자 회장(1995~97년)으로 있을 당시 세계적인 TV 제조사를 만들기 위해 톰슨 멀티미디어라는 회사를 인수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민영화위원회가 핵심 국방 기술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명분삼아 다 된 딜(deal)을 무산시킨 합병이었어요. 프랑스 국가원수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사과까지 했습니다. 19세기 말 강화도에서 침탈된 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돌려주겠다고 미테랑 대통령이 제안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이었죠(물 론 영구 임대 형태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합병 실사 과정에서 톰슨 측이 초고속 인터넷 관련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꽤 상용화 가능성이 좋은 기술로 판단되더군요. 그래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꼭 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삼성, LG 등의 국내 제조사를 불러서 국산품 개발을 권해보았는데 제대로 결과를 못 만들었습니다. 결국 대만 업체를 초청해 개발을 시켰고, 제품 1개당 600 달러 하던 것을 60 달러 수준으로 양산 가능하게 만들어 국내 산업계에서 사용하게 했습니다. 결국 카리스마적인 ICT 지도자가 있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숱한 시행착오가 오늘의 성과를 만든 것이죠. 책으로만 봐서는 모르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배 전 장관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MIT 기계공학 박사 과정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당시 미국 정부는 원자력과 우주공학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장학 혜택을 줬고, 나도 원자력 공부를 오래 했다”고 술회하며 한국 정부의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수학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푸는 것

“지금 탈원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명분은 비등형 경수로 시스템으로 돌아갔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의 위험성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는 중수로 발전을 채택한 월성 1호기를 제외하고는 전부 가압형 경수로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총 24기가 국내에 있다). 일본은 48기, 중국은 곧 100기까지 증가될 거라고 하는데, 한국의 원전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다고 전 세계 과학기술계가 입을 모으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느냐. 연구개발 과정에서 숱한 착오와 실패 끝에 경험으로 학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예요. 로봇을 제작하고 나면, 사람처럼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학습과 진화를 해 갑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수학 공부할 때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푼다고 하잖아요. 과학기술은 굉장한 노력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 노동입니다. 그걸 알아야 해요. 특정 기술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정책적 판단을 내놓기 전에 그 단계까지 쌓은 성과를 봐야죠.”

– 6•3세대의 총아(그는 한일협정 반대를 위한 서울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였다 가 과학기술 연구자와 기업인, 그리고 장관의 길로 접어든 ‘스펙터클한’ 이력이 있습 니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결국 ‘우리가 뭘 먹고 사느냐’에 대한 고민이에요. 나는 청년기에 군사정 권의 외교 정책에 반대했지만, 나중에 사회인이 되어서는 ‘국민을 잘살게 한다’는 방향에는 적극 동감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때 귀국해서 카이스트의 초기 구성원으로 일하면서 했던 연구 중 하나가 ‘사람이 연탄가스로 죽지 않을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어요. 이 숙제는 그 때 박 대통령이 카이스트에 왔을 때 조교를 하던 제게 직접 내줬던 문제였어요. 과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답으로 내놓은 기술이 온수온돌이었답니다. 첨단 선행 기술이 만들어 진 후 누군가는 다시 상용화된 기술을 개발해 내고, 그 모델을 바탕으로 돈도 벌죠. 그 자산이 축적되면 사업이 커지고, 고용 창출도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기업을 각박하게 규제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부(social wealth)를 위한 도구로 적극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 말씀하신 내용만 들어보면 지금은 박정희 정부 때와 달리 “시장에서 잘 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관점으로 해석이 됩니다.

“삼성과 LG가 세계 시장에서 인기 있는 초일류 제품 브랜드가 되었죠. LCD를 갖고 피가 터지는 경쟁도 하고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어디에 개입했습니까? 굳이 한 것이 있다면 두 회사가 기술력으로 각축을 벌이는 사이에 법과 제도로 간섭하지 않은 것입니다.

과학은 사회 문제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 한국은 이미 중국에 인공지능 시장의 우위를 빼앗겼다는 말도 나옵니다. 앞으로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중국의 유비테크라는 회사를 들여다보니 로봇 중에서도 데이터 처리와 서브모터 기능이 매우 탁월하더군요. 그래서 중국 정부가 거금을 들여서 선행 투자를 했고, 지금 미국의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와 함께 세계 로봇 시장의 양대 산맥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인공지능 산업계 사정에서 디바이스(device :기기) 개발력으로 중국을 뛰어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돈이 안 돼서 인공지능을 홀대하던 사이에, 중국은 실험적인 선행 투자로 이미 앞서가 버렸습니다. 차라리 한국은 가장 효과적인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개발에 집중해야 합니다. 로봇도 인간이 이용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그 안에 폭넓은 사용자 경험과 가치있는 소스를 담아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한류라든지 폭넓은 국제 콘텐츠를 개발한 경험이 있죠. 그 자산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코딩 교육해야

– 앞으로 무엇에 좀 더 집중하실 계획이십니까.

“유비테크 제품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시작하는 컴퓨터 코딩 교육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더군요. 코딩교육을 하는 목적이 과거 산업사회에서처럼 코딩 기술 자체를 국산화하여 수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코딩은 수학 계산과 비슷하여 상품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코딩을 익숙하게 구현하면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고 창의적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코딩 숙련도를 높이려면 이미 품질과 성능이 증명된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우수한 국산 로봇도 생산되고는 있습니다. 성능은 매우 창의적이나 공급 경험이 부족하여 세계 첨단 코딩 교육에 활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국산 로봇의 공급 실적이 축적 될 때까지는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선진 로봇을 도입하여 우리 AI 코딩 교육에 응용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합니다.”

– 배순훈 · 천영준과의 인터뷰

지구와에너지
(사)한반도평화에너지센터가 발행하는 신개념의 컨설팅형 입법정책 계간지 매거진 '지구와에너지' 입니다.

2 thoughts on “포스트 코로나 시대 AI와 로봇, 과학을 말한다 –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특별 인터뷰

  1. 융합인재교육(STEAM)과제를 수행하면서 알파미니를 구매해 창의적 사고가 가능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초등생 코딩기초 교육으로 3D메이커, 아두이노 H/W코딩, 블록코딩수업이 있지만…
    알파미니는 음성인식기반이라 초중생뿐 아니라 중장년 코딩교육생들에게 인기가 높고, 교육결과도 좋을 거라 예상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귀한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알파미니’의 UX 지향적 설계에 많이 감탄하며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