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약’의 심장 전원 분야서 세계 1등 –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인터뷰

interviewer 전영기 객원 편집위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과유불급 대한민국’의 저자
이상헌 이뉴스투데이 기자
photographer 김주한 디자이너

모든 전자장치에 있는 에너지 낭비
고효율 정보통신 기술 적용하면
석탄 화력 1기 발전량의 1/4 절감

이건수(78) 회장은 그가 경영하는 동아일렉콤이라는 회사 보다 기부를 많이 하는 기업인으로 더 알려졌다. 누적 매출액이 2조2천억원 쯤 된다는 중견기업의 오너가 아무 조건 없이 평생 210억원을 개인 구제와 장학금, 각종 사회 사업에 기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인을 위협하기 시작한 지난 봄에도 이 회장은 바이러스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1억원을 내놔 그 뒤 이어지는 성금 대열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런데 에너지가 공기처럼 중요해진 한국과 현대 산업 사회에서 동아일렉콤이 기여한 공로는 개인 이건수의 자선 행위 보다 훨씬 커 보인다. 동아일렉콤은 1980년대 이래 에너지 생산이 아니라 에너지 절약 분야에서 최초의 국산 기술과 세계 1등의 기술들을 잇따라 선보여 왔다. 동아일렉콤의 전원 시스템은 현재 뉴욕증권거래소의 네트워크 시스템에 들어가 있다. 시스템 구성 요소 간에 0.01초도 끊기지 않고 가장 정밀하고 질 좋은 전원을 연결시키는 기술에서 세계 1위라는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절약은 제5의 에너지

KT, SKT, LGU+ 등 한국의 이동통신 3사도 동아일렉콤의 전원 장비를 쓰고 있는데 이 장치로 지금까지 이들의 기지국에서 절감된 에너지가 5,916GW이라고 한다. 충남 보령발전소의 1년 발전량이 2만2,879GW인 것을 감안하면 동아일렉콤은 한국에서 가장 큰 석탄 화력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1/4 을 절약하는 셈이다. 이쯤되면 에너지 절약이 왜 ‘제5의 에너지’로 불리는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있을 것이다. 기부천사 이건수가 아니라 ‘에너지 절약’의 전도사 이건수 회장을 지난달 중순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동아일레콤의 연구소 공장에서 만났다.

– 기후 변화, 코로나 시대가 닥치면서 어느 때 보다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는 문제가 중요해졌습니다. 회장님은 평소 에너지의 효율을 강조해 왔지요.

“에너지는 질좋은 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전기를 어떻게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쓰느냐도 중요합니다. 원자력 기술을 발전시키고, 태양광과 풍력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측면이라면 전원기술을 끊임없이 개발, 혁신하고 국산화하는 것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입니다.

물론 자동차 10부제를 하고, 전구 한등 끄기 운동도 필요하지만 그런 소비 자제 운동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나는 평생 에너지 절약 사업에 전력투구한 사람입니다. 2025년에서 2050년 사이에 세계 석유원의 80%가 고갈되리라는 어느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류의 과제가 된 셈이지요. 정보통신 산업의 기업인으로서 저는 고효율·고신뢰성 전원을 개발해 많은 산업분야에 공급함으로써 에너지 절약 부분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의 동아일렉콤 연구소에서 취재진을 안내하는 이건수 회장(맨 앞). 오른 쪽은 인터뷰어인 전영기 본지 객원편집위원.

고효율·고신뢰성 기술로 에너지 절약 추구

– 전원(電源·power supply)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전원은 전원공급장치를 의미하기도 하며, 이는 전자기기의 구동에 필요한 안정한 전력을 공급해 주는 장치로 입력전력으로부터 필요한 출력전력을 생성하는 전자회로를 뜻합니다. 흔히들 디지털이 최고의 기술이며, 현대를 이끌어 가는 주축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복합기술인 전원이 뒷받침하고 있어요. 인체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이 멎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첨단 디지털 제품도 전원이 없다면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전원은 에너지가 흐르는 모든 시스템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심장과 같습니다.

동아일렉콤은 유무선 통신의 핵심 장치인 전전자교환기(TDX)를 비롯해 1987년 이래 지금까지 2,200여종의 전원을 개발했습니다. 개발비로 1,600억원을 썼어요. 2019년 말 기준으로 한국은 유선 1,360만명, 무선 6,900만 명, 초고속인터넷망을 2,200만명이 이용하는 IT 최강국이 되었는데 여기에 적용되는 각종 전원의 90%를 저희가 개발한 품목이 충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AT&T의 자회사인 루슨트테크놀로지의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해 주전원을 공급하였고, 보수적이고 기술 우월주의로 좀처럼 뚫기 어려웠던 일본 시장에도 진출해 소프트뱅크에 초고속인터넷의 서비스용 전원을 공급하였습니다.“

– 전원 개발을 2,200종류나 했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전자 장치엔 저마다 필요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딱 맞는 전원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전전자교환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전전자교환기는 통신에서 유선 전화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온 장비입니다. 국가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동아일렉콤이 함께 참여해 개발했지요. 체신부에서 전전자교환기용 전원국산화에 참여할 업체를 모집하기 위해 신문에 공고를 냈지만, 기술력을 갖춘 업체도 없었고, 개발에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동아전기(現, 동아일렉콤)만이 유일하게 참여를 결정하였죠. 그리고, 교환원 없이 다이얼이나 버튼을 인식해 상대방의 번호를 찾아 통화를 연결하는 전전자교환기는 정보통신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죠.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TDX-1A(1만회선 용량), TDX-1B(2만회선), TDX-10A(10만회선), TDX-100(20만회선)의 비약적인 용량 확대를 구현하면서도 장치의 사이즈는 오히려 작아져 정밀 기술의 전설로 남아 있지요. 전전자교환기는 교류 전기 220V/380V가 들어오면 안정한 직류 48V의 전압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이렇게 각각의 장치에 맞는 전압을 각 전자 장 비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각 통신 시스템에 적용될 2,200개의 전원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정류기는 어떤 기후적 재난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전기가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하 30도에서 영상80도 환경에서도 견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정밀성에 대한 강인한 집념이 아니면 버티기 어려운 곳이 정보통신기술의 세계입니다.

이런 방식을 거듭하면서 동아일렉콤 표준 정류기의 효율이 약 50년 동안 80%에서 85%→88%→93%→96%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반세기 동안 정류기 한 대당 에너지 손실이 500W(와트)에서 83W로 급감했지요. 자연과 물리의 이치상 100%효율은 나오지 않겠지만 이렇게 안간힘을 다해 효율의 수치를 조금씩 올리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절약이 달성됐습니다. 지금도 동아일렉콤은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하여 2020년말에는 98%의 고효율 제품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에디슨만 기억하지 누가 테슬라를 알아주나

– 에너지 절약, 즉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 노력이 눈물겨울 것 같 습니다.

“엔지니어와 연구소 직원들이 밤잠을 자지 못하고 일궈낸 성과들이죠. 실제로 33년전에 연구원이 ‘우리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불철주야 이렇게 노력하시는데 내 기술이 이것밖에 안 되서……’라는 자책의 내용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숙연해 짐). 저는 그날부터 전 세계를 돌아 다녔습니다. 전원분야 석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연구원들을 키워 줄 수 있을까?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 노력을 했습니다.

저는 1986년 동아전기라는 부도직전의 회사를 인수해 오늘날 동아일렉콤 을 일으켰는데 회생의 비결이라면 ‘2등은 필요 없다’ ‘2등 할 거면 문 닫자’는 정신 덕분이었습니다. 부도직전의 회사를 인수한 이유도 회사는 망해도 당시 직원들이 ‘한 가지 기술에서만 세계 최고가 되어 보자’는 제 말을 이의 없이 다 따라주었기 때문이죠. 19세기 미국의 전기 기술을 보세요. 사람들이 에디슨만 기억하지 테슬라를 알아 줍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기술을 개발했지만 에디슨은 아침에 특허 등록하고 테슬라는 오후에 등록하면서 역사가 달라졌다는 것 아닙니까. 1등만이 살아 남습니다. 저는 회사의 매출의 10%를 반드시 연구개발 예산에 투입합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취재진은 연구소 시설을 둘러보기도 했다. 근무 중인 직원 들에 대해 이 회장이 기울이는 관심은 유별나 보였다. 그는 “자넨 입사한 지 10년 됐지? 코로나 걸리지 마” “올해로 15년이야? 정말 코로나 걸리면 안돼” 공장 섹터 하나하나를 둘러보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오랜 친구 대하듯 했다. 이 회장은 “우리 회사에선 10년의 근속연수는 짧은 편이야. 여기 있는 모두가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렉콤은 동종 업종에서 드물게 대기업 수준의 임금과 복지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유 명하다. 연구소 공장엔 축구장 등 체육시설과 오피스텔 같은 기숙사 시설, 웬만한 레스토랑 못지 않은 식당 등이 완비됐다. 이런 환경은 기술 집약적 비즈니스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업체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기술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은 미래 걱정 없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길러진다는 이회장의 체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현장에 뛰어 들어 창의적으로 돌파하는 기업가 정신

기술이 앞서면 외국 경쟁사를 쫓아갈 일도 사라진다. 이 회장은 “기술이 1등이면 제품을 사달라고 읍소할 이유가 없어진다. 수요자가 먼저 찾아와 공급을 요청하는 방식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일렉콤은 이동통신 외에도 우주항공, 의료, 금융, 해양, 방위산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원 장치에 관한한 초일류 기술을 지향하고 있다.

이건수 회장은 정보통신업에 뛰어들기 전 20대말에서 40세까지 미국 뉴욕 등지에서 가발장사, 슈퍼마켓, 무역업 등으로 돈을 벌었다. 그는 경희대 정외과 시절 4·19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ROTC 출신 장교로 전역한 뒤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났다. 현장에 뛰어 들어 창의적으로 상황을 돌파해 가는 기업가 정신은 그때부터 키워졌다. 1968년 김포공항을 이륙할 때 그의 가방엔 100달러와 가발 100개가 들어 있었다. 그가 들려준 일대기는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 자체였다.

“경유지인 시애틀 공항에서 가발을 다 빼앗겼지 뭐야. 사실은 빼앗긴 게 아니라 신원 보증이 되면 되찾아 갈 수 있는 것이었는데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그냥 두고 빠져 나왔어. 가발을 가져 오면 사업을 도와주겠다던 뉴욕의 친구는 떠나 버렸어. 무작정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어디 가느냐고 물어. 내가 아는게 뭐가 있겠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플라자호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런게 전부였는데 그래서 두 번째 플라자호텔을 불렀지.”

이 회장은 아무 대책 없이 1주일을 뉴욕의 최고급 호텔에서 무단취식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이 회장을 체포의 위기에서 구한 것은 당시 주뉴욕 총영사관의 도움이었다. 이 회장은 영사관으로 무작정 찾아가 “내가 잡히면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사관에서는 황당해 하면 서도 직접 호텔로 찾아 가서 비용을 지불해 주었다. 이건수의 청년 시절 뉴욕 생활은 이렇게 외교 공무원의 도움으로 시작되었다.

그런 뒤에 운이 풀렸다. 뒤늦게 시애틀 공항에서 되찾은 가발 100개를 팔았더니 개당 500달러였다. 한국에선 개당 10달러에 샀으니 50배 가까이 이윤을 남겼다. 당시 미국내 외국인 노동자 월급은 평균 250달러였으니 16년치 임금을 미리 벌어들인 것이었다.

존중하는 마음, 기술로써 으뜸, 신용으로 책임 완수

10여년 뒤 ‘아메리칸 드림’은 이루어 졌다. 40세 때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건수 회장의 기업가적 본능은 정보통신 산업의 발흥기인 1980년대 한국에서 더 빛이 났다. 동아일렉콤의 사훈이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술로써 으뜸가고, 신용으로 책임완수”인데 여기에 이건수의 기업가 정신이 투영됐다.

이 회장은 냄새나는 하천가에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침수가 되었고, 꽁보리밥에 새우젓이 다인 점심을 먹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직원들의 눈빛과 기술연구진의 뜨거운 열의를 느끼고 인수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1986년 인수한 부도직전의 회사, 동아전기의 건물과 현장 사진을 취재진에 보여줬다. 앨범엔 대한민국 정보통신 산업과 함께한 30여년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원 장치 한 분야에서만은 세계 1등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그는 인재부터 영입했다. 동아전기 인수 이듬해인 1987년 용인시에 위치한 전원연구소를 설립했다. 1등이 되려다보니 갖춰야 할 조건이 기술 국산화였다. 그는 고비 때마다 “2등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직원들을 다그쳤다. 외국 제품을 현지에서 돈 주고 사와 벤치마킹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간 우리의 것으로 발전 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곤 했다.

취재진과 함께 연구소 전원전시실을 둘러보던 이 회장은 이동통신용 전원 공급장치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췄다. 이는 당시 AT&T로부터 100% 수입에 의존하던 설비를 처음으로 대체한 제품이다. 이 제품에는 두뇌를 탑재해 원격으로 감시 및 제어를 할 수 있었다.

“당시 사용 중이던 대용량 정류기의 소음이 너무 심해서, 통신사들은 시스템 운용자들을 소음에서 보호하기 위해 정류기는 지하에 설치하고, 시스템이 있는 4층까지 케이블을 위로 끌어다 써야만 했어. 이렇게 되니 케이블 설치비용뿐만 아니라 전력손실도 엄청나게 소모됐었지. 그런데 우리 제품은 고주파 스위칭 방식을 통해 소음이 없는 제품을 개발해서 설비와 근로자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게 되었지. 불필요한 비용이 확 줄었어. 미국에서 어떻게 팬을 없앴냐고 묻더군. 당연히 알려주진 않았지(웃음).”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영원한 1등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회장은 ‘한 가지 기술로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또 지금까지 그랬던것 처럼 미래에도 제품을 파는 기업보다는 기술을 파는 기업으로 남을 것이라는 신념을 다지고 있다.

“태어날 때 가난은 죄 아니나 죽을 때 가난은 죄”

이건수 회장은 일제 말인 1942년 중국 허베이성 스자장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해방 직후 고향인 신의주로 터전을 옮겼지만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공산당 인민위원회의 핍박에 시달려 서울로 도망쳐 나왔다.

유년기 겪었던 지독한 가난 때문인지 이 회장은 직원 가족의 교육까지 챙기는 모습이었다. 그는 “유학을 가든 한국에서든 회사 직원이나 그의 자녀들은 대학교 뿐 아니라 석박사 학위를 딸 때까지 모두 장학금을 지급 받는다”고 했다. 인터뷰의 마지막, 이건수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것은 죄다.”

– 이건수 · 전영기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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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에너지 절약’의 심장 전원 분야서 세계 1등 –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인터뷰

  1. 한우물 열심히 파고 있구나. 좋은 기사 잘 읽었다. 동아일렉콤이라는 회사 잘 살펴볼께. 친구야 건투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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