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데이터로 살펴 본 코로나 시대 “힘들고 무섭다”···성찰 자본주의 도래

천영준 데이터 평론가,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한번 병에 걸리면 살이 검게 썩고 피고름이 온몸에 돋아난다고 했다. 사람들은 마귀가 역사한 결과라고들 수군거렸다. 공포에 질린 군중들은 소변에 몸을 푹 담그거나 병아리 피를 이마에 발라 병을 피해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록 전염병에 더 잘 걸렸다. 몸이 한껏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검은 귀신이 쓰이면 길게는 닷새, 짧게는 다섯 시간 만에도 죽어 나갔다.

정상적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종부 성사를 집례한 사제도 며칠 만에 같은 귀신에 씌어 도륙돼 나가는 판이었다. 보통 사람이야 죽고 사는 문제가 늘 백지장 뒤집듯 한다 쳐도 하나님에게 봉사하는 자들이 생떼 같은 비명횡사를 하는 것은 몹시 큰 충격이었다. 시신을 집안에 끌어 안고 있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위험했기 때문에 3일상이든 5일상이든 계획도 하지 못하고 바로 수레로 싣고 나가 교외의 집단 매장지에 파묻곤 했다.

너무나도 황망하고 원망스러운 시절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고 애원했건만, 신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병마가 덮치는 것을 면(免)해주지 않는단 말인가.

흑사병-. 동양에서는 온역(瘟疫)이라고도 부르는 전염병은 절대자의 섭리 하에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던 중세인들에게는 풀 수 없는 질문이자 비극 이었다.

“유해가 성당으로 날라져 갈 때 열이나 열두 사람 이상의 이웃들이 따라가는 일은 아주 드물게 되었습니다. 관을 메고 가는 사람들은 지위 높은 유지들이 아니라 하층 계급에서 끌려 나온 무덤 파는 천한 인부들이었으며 파 둔 구덩이가 있으면 아무 데나 곧 관을 묻어 버렸습니다… 하층계급이나 중산계급 사람들은 더 비참했습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죽은 이에 대한 동정심은 고사하고 시체가 썩어서 자기들에게 병이 옮겨 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모두 똑같은 예방 수단을 찾아낼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관이 모자라 널빤지에 얹혀서 들고 가는 일도 흔했지요. 하나의 관에 둘 또는 세 사람의 시체를 넣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우한 코로나와 흑사병의 유사점

2019년 12월부터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재현된다. 병에 감염돼 죽은 자의 시신은 염습이나 별도의 예식을 치를 여유도 없이 몇 시간 만에 바로 화장터로 간다. 유가족의 임종과 작별은 꿈 이야기다. 창졸 간에 자신의 부인이나 남편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도 못했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 온다.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 서구 사회 못지 않게 상장례를 중시하는 유교 사회인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매우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상황이다.

3월 중순경 ‘판데믹’(pandemic, 대유행)이 선언된 이후 국면에서 남유럽 지역은 죽음의 장으로 전락했다. 스페인에서는 3월 25일 기준으로 확진자가 3만 5136명이 발생했다. 중국(8만 1093명), 이탈리아(6만 3927명), 미국(4만 3721명)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숫자다. 2311명의 사망자 기록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매우 처참하다. 마드리드의 병원 영안실이 가득 차서 아이스링크로 시신을 보내고 있다. 군 병력들은 각 병원들을 돌며 병상에 방치된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고 한다.

비극성은 전염병의 구체적인 원인이 아직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더욱 배가 된다. 흑사병의 발생 원인이 ‘쥐’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답인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바이러스도 박쥐가 근원이라고 하나 정확한 실마리를 주지는 못하고 있다.

데카메론의 저자 “로마 가톨릭의 무능 한탄”

인간은 무지의 영역에서 공포의 크기를 키우는 존재다. 『데카메론』의 저자인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흑사병에 대해 좀처럼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한탄하며 개개인이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고 풀어야 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신에 의한 예정론적 인간관을 뛰어넘은 성취적 인간관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 결과 중세 사회 전체가 거대한 지적 소용돌이에 접어 들며 르네상스라는 새 시대가 열렸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도 기존의 의학계나 정부가 분명한 대안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슈다. ‘자가격리’, ‘ 사회적 격리’, ‘마스크 착용하기’는 전염병이 전(全) 사회적으로 맹위를 떨치지 않게 하는 처방일지는 몰라도 사태를 종식시키기는 힘든 조치다. 흑사병이 1348년 발생하기 시작하여 약 200년간 유럽에서 맹위를 떨쳤던 것만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이슈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기다. 일단 그저 ‘무서울’ 뿐이다. 시간을 두고 연구하고, 백신을 개발해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조차도 임상실험과 상용화를 포함해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대다수의 군중은 임시방편으로 버텨야 한다. 물론 그조차도 그사이 죽으면 그만이기에 너무나도 허탈하고 슬플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위기는 기회로 바뀔 수 있을까

경제 전문가들이 으레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위기는 기회가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과연 경제 생태계를 비롯해 인류의 삶을 또 다른 경지로 도약하게 할 계기가 될까. 흑사병은 분명히 르네상스 시대의 단초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이 중세 시대를 지배했던 지식인들은 신에 대한 절대적 의지를 표명하는 지식만이 구원이라고 주장했다. 그 믿음대로 기득권층이 사회를 지배했다. 그러나 체제의 저변을 붕괴시키는 전염병에 대해 대표적 지식인인 사제들과 영주들이 이렇다 할만한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하자 ‘그들만의 리그’에 분열이 찾아 왔다. 우선 농노 해방 풍조가 생겼다. 1340년대 기준으로 전 유럽의 인구가 약 1억 명인데 그 중 2500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으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의 평균 임금이 올랐다. 영주들이 토지 소유권과 인신 구속권을 동시에 갖던 중세식 경제 체제인 장원제(莊園制)가 몰락하고 임금노동 기반의 새로운 농업 경제 체제가 들어섰다. 자연히 ‘성(城) 안’의 영역인 도시가 대안적인 자원 배분 시스템으 로 도약하게 되었다. 잉여 자원을 중개하고 거래할 장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업체제의 발달은 사회 생산력의 진보를 낳는다. 인구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삶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그 과정에 제대로 적응하고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 집단은 물론 망했다. 보카치오의 아버지가 다녔던 피렌체의 바르디 은행은 소영주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 거래 부실로 인해 파산했다.

대량으로 돈은 푸는데 장기적인 대책은 없어

경제체제뿐만 아니라 정신문화 차원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알프스 이남 에서는 기독교의 신 이외에 인간이라는 주제를 고민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보카치오, 페트라르카 이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예술과 기술의 다양성이 꽃피는 세상이 펼쳐졌다. 알프스 이북에서는 믿음 자체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원하는 사람들끼리 종교 혁명을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 장 칼뱅, 얀 후스 같은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거대한 질문에 으레 뒤따르는 분열은 사회를 변화 시키고 새로운 토의 주제들을 낳게하는 촉진자 역할을 한다.

반면에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딱히 위기를 기회로 바꿀 만한 요인이 분명 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 지원을 통해 당장 시장에 발생하게 될 충격을 막으려고 한다. 대기업의 일감을 받는 하청기업, 소규모 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큰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그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 프로그램이나 지원 제도가 모색된다. 회사채 만기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차환 프로그램이나 채권 조정 펀드 등을 통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게 될 것 같다.정치인들은 2020년 4.15 총선을 겨냥해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경기도가 3월 말경 1320만 명의 도민들에게 1인 당 10만원씩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그런데 일련의 조치들이 과연 거대 전염병으로 꺼져 가고 있는 사회의 엔진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약간의 돈이 국민들에게 주어진다고 해서 소비가 살아나거나 어려워진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보수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기본소득이 아닌 ‘코로나 채권’과 감세 정책으로 방향을 바 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어떤 전문가들은 대량으로 시장에 돈을 푸는 정부의 조치가 중장기적으로 절실한 경제 시스템의 구조개혁을 망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차라리 기업의 노동 유연성 확보, 저금리 상황에서 과잉 유동성으로 거품이 낀 금융시장의 개선 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기 미봉책은 보이는데 장기적인 처방은 발견되지 않는 형편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준이 되려면, 극적인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전염병이 산업 구조와 시장의 수요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면밀한 관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극단적 모빌리티의 가능성은 있는가

위기가 만성화될지 아닐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신호가 연쇄적 반응이다. 자동차 업체와 항공업체의 주문이 줄어들게 되면 원자재를 공급하는 철강 업체와 도금재를 납품하는 비철금속업체가 타격을 입는다. 산업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마비의 기운이 퍼지는 것이다. 이미 2020년 2월 이후 전세계 철강업계는 자동차와 조선 수요 부진으로 인해 감산을 논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 업체에 납품을 하는 중소기업들은 매출채권 회수 문제, 고용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코로나 위기, 1년 지나면 기업 40% 없어질 듯”

코로나 바이러스의 ‘본토’인 중국은 이미 전(全) 산업에 걸친 실업 상태가 보편화되어 있다. 안휘성에 소재한 태양광 부품사인 하이룬광푸(海潤光伏)는 2019년 기준으로 45억1900만위안(약 8407억원) 매출에 1023명 규모의 기업이었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 타격으로 인해 설비와 공장부지 등을 6억 1800만 위안에 매물로 내놓았다. 임직원 연봉의 20~30% 삭감, 대량 해고 등은 중국에서 비일비재한 이야기다. 유명 음식 프랜차이즈인 시베이(西貝)는 2만 여명의 직원을 대기발령냈고, “더 이상 회사에 복귀할 필요가 없다”고 일방 통보하는 중견기업들도 허다하다. 시내버스 운행 도시가 2월 기준으로 28%나 감소했고, 전국 고속도로 교통량도 같은 달 기준으로 50%가까이 줄었으니 서비스업과 인프라 산업의 부진은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삶의 파이프 라인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존 체임버스 전 시스코 회장은 “(코로나 위기 이후) 1년 정도 지나면 지금 있는 기업들의 40%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소멸의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우리는 지금 야구로 치면 9회 중 1회 초에 불과한 상태”라고 예견했다.

물론 위기 국면에서 위축되지 않고 전략적 투자를 통해 기회를 도모하는 경우도 있다. 한 연구는 30년간 미국의 1175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위기 국면에서 R&D 투자와 광고비 지출을 늘리는 것이 이후의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에 크게 기여한 사실을 밝혔다. 특히 경기 변동에 민감한 산업에서는 꽤 효과가 높았다. 선제적 광고비 투자를 한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는 50% 더 우수한 성과를 보였고, 수익성 측면에서는 200% 더 높은 효과를 봤다. 체임버스가 CEO로 있었던 시스코는 97년 금융위기 당시 망해가던 아시아 시장에서 오히려 영업 투자를 갑절로 늘렸다. 시스코가 그 이후 누린 성과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예 위기 국면에서 창업된 기업들도 있다. P&G는 금융공황 이 서구 사회를 강타하던 1837년 만들어진 미국 기업이다. 당시 북미에서는 ‘골드 러시’ 이후 서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 이 이어지다가 거품이 터진 후에는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을 했다. P&G는 약 6년 간의 혹독한 불황을 견뎌내고 1861년부터 4년 간 지속된 남북 전쟁 특수 를 이용해 군납으로 돈을 벌었다. 세계적인 PC 업체인 IBM은 1873년부터 약 20여 년 간 이어진 불황 국면에서 설립됐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철도 버블이 꺼진 상태에서 상당수 증권사와 은행들이 망하고 있었다. 증기기관차 발명으로 매일 1개씩 철도회사가 생기고, 개별 회사들은 주가상승을 유도하며 신문에 허위공시나 과다광고 등을 게재했다. 결국 실제 재무 성과도 없는 철도회사들이 주가만 높은 상황이 계속되며 끝내 버블이 터진 것이다. IBM은 불황기에 각 기업들이 업무를 기록하고 표준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체계적인 과업 관리와 꼼꼼한 성과 측정을 유도하기 위한 컴퓨팅 기술을 개발했다.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IBM의 우수한 업무 표준화 시스템은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시장을 장악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위기는 강자와 약자의 위치를 바꾸고, 신흥 대장주를 발굴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회를 읽어 내고 경기 역행적 투자를 감행한 기업들은 극단적 모빌리티의 수혜를 입는 듯도 하다.

막스 베버, 트럼프의 조부도 전염병으로 사망

문제는 심리다. 그런데 흑사병이나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은 다른 경제위기와 조금 성질을 달리하는 측면이 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훨씬 큰 위기이기 때문이다. 가령 1918년 최초로 발병한 이후 2년 간 세 차례 확장되었던 스페인 독감은 43개국에서 평균 6%의 GDP 감소 효과를 낳았다. 전세계적으로 3900만 명(당시 인구 2%)이 사망하면서 소비도 8% 가량 쪼그라들었다. 19세기 말부터 세계 경제 성장의 메카로 불리던 미국은 3년 간 12% 가량 역성장했다.

유명 인사들이 전염병에 걸려 쓰러지는 것도 공포 확산에 영향을 미친다. 전세계적으로 최대 1억명이죽었다고 추산되는 스페인 독감은 막스 베버, 구스타프 클림트, 프레드릭 트럼프(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부)를 희생시켰다. 1918년 당시 식민지 통치 중이었던 조선에서도 14만 명이 죽었고, 고위 관료나 상류층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양상이 비슷하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죽다 살아났고, 고령인 찰스 왕세자, 캐나다 트뤼도 총리의 부인, 스페인의 카르멘 칼보 부총리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배우 톰 행크스 부부와 인도에서는 발리우드 인기 배우인 카푸르도 코로나에 감염됐다. 전염병은 사회 하층부에서부터 퍼진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오피니언 리더까지 희생자가 되면 미디어를 통해 불안이 전 사회로 확산된다. 사회 경제적 지위가 안전과 위생을 담보하지 못하면 어떤 방식으로도 감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무력감이 퍼진다. 무력감은 일반인들이 내일을 준비하기 어렵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코로나 위기가 금방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되는 또 다른 지표가 물동량 감소와 운임 증가다. 한 보도에 따르면 2020년 3월 기준으로 전세계 화물기 운항은 60% 가량 줄었지만 운임은 2배 가량 상승했다고 한다. ‘격리 경제’(Quarantine economy)의 여파다. 식품이나 농축수산물처럼 생산 과정에서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의 경우 전염병으로 인한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따라서 높아진 임금이 전부 최종 가격으로 이전되는 경향이 있다. 화물기나 철도를 통한 물류의 경우 전염병 확산기에는 이동수단에 제한이 생기기 때문에 자연히 운임이 오를 수밖에 없다. 2020년 3월 기준으로 유럽의 해운사들은 성수기 할증료라는 것을 붙이기 시작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의 국경이 봉쇄되면서 내륙 운송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 이렇게 사람이 서로 통하고 물자를 전달하는 구조에 차질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군중 심리도 악화되게 마련이다. 삶의 기초 인프라가 막혀 버리기 때문이다.

삶의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사는 법을 잘 모른다. 잘 죽는 법은 더 모른다.” 1세기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한 말이다. 그런데 필자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이 메시지의 의미를 더욱 절절하게 음미하게 됐다. 원하지 않아도 남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격리 경제’(quarantine economy) 덕분에 홀로 집중할 시간이 많아 져서다. 자칫하다간 외부에서 바이러스를 옮겨 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순간순간에 더 긴장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랫동안 빼곡한 스마트폰 속 스케줄과 카톡 메시지 때문에 좀처럼 챙기지 않던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구나. 나는 사는 법도, 언젠가 반드시 찾아 올 죽음을 준비하는 법도 모르고 지내고 있구나.”

빅 데이터 감성어 ‘집’ ’하루’ ’마음’이 대세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SNS나 각종 커뮤니티에 남겨진 사용자들의 메시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온라인 담론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다는 말이 있고, 돈을 받고 댓글을 남겨준다는 사람들의 괴담도 있었지만 디지털 공간은 여전히 민심을 포착하는 데 유용하다. 일단 대면 채널을 통해 좀처럼 드러내기 어려운 각종 속마음들과 관심사들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소프트가 개발한 ‘소셜 메트릭스’를 통해 ‘코로나’와 관련된 감성과 연관어를 살펴 봤다. 코로나 사태가 국내에서 초기화된 1월 21일부터 4월 21일까지의 자료(16,210,325건)를 살펴보면 가장 상위에 랭크된 감성어가 ‘확산’(775,234건)과 ‘안전’(304,997건)이다. 20세기 중반 이후로 인간이 도시에서 보장받던 생존권이 전염병으로 인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위기’(4위, 245,257건) 라고 현재를 인식하게 하고, ‘무섭다’(8위, 185,246건)고 느끼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키워드 못지 않게 중요한 표현이 ‘힘들다’(3위, 282,119건)는 것이다. 위기, 확산, 안전은 사회 구조를 통틀어 인식하는 것이지만 힘들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명료한 감정이다.

왜 힘든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이후 찾아온 ‘경제 코로나’가 원인일 수 있겠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개개인이 직면하는 불편함과 부담감이 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코로나’라는 단어에 ‘힘들다’는 표현을 포함시켜 다시 빅데이터를 돌려본 결과 ‘집’(2위, 119,543)과 ‘하루’(5위, 96,621건), ‘마음’(7위, 68,126)이라는 말들이 상위에 포진하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로 인해 오랫동안 집에서 머무르면서 짜증과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외부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활동을 하면서 보낸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타인지향적인 삶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코로나 사태는 이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거나 집 안에서 축약해서 영위하게 하는 요인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편하고,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기약이 없기에 화만 늘어 간다. 엄마(10위, 53,577건)는 온라인 개학으로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8위, 56,861건)에 대해 24시간 신경쓰느라 ‘힘들다’. 건강(12위, 41,829건)을 걱정하자니 힘이 들고, 가족(17위, 38,182건)들과 계속 부대껴 있자니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그동안 매우 가까이 두고 있었으면서 소홀히 했던 것들을 재해석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의외의 생경함과 복잡성 때문에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끄는 조용한 생활 혁명

일련의 메시지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확장과 팽창 위주의 삶을 되돌아보라고 요구한다. 내실은 없이 도시 안에서 바쁘게만 살아 왔던 인생을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필자는 ‘성찰 자본주의(Reflexive capitalism)’ 시대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견해 본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더 높게 평가되기 위해 소비하던 것들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으로 자아를 경영하기 위한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아이템들이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시대의 소비자들은 예전의 삶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 할 것이다.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가까이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 이전과 다름 없이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와 연결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무작정 삶의 넓이와 부피를 방치한 채로 마음 건강을 방치할 수는 없을 것 으로 보인다. 코로나로 ‘집콕’ 상태가 길어지면서 청소년들이 집에서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청소년’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도서들은 전년대비 82% 매출이 성장했고, 자녀교육서는 36%가 늘어났다. 여러모로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삶의 조용한 혁명을 이끄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천영준

지구와에너지
(사)한반도평화에너지센터가 발행하는 신개념의 컨설팅형 입법정책 계간지 매거진 '지구와에너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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