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아무리 아파도 빚내는 금융은 독약

이상헌 이뉴스투데이 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정지시켰다. 중국 방역 당국의 한달이나 늦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 염 상황 발표가 결국 펜더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이어지면서 책임 공방도 거세다.

하늘길과 바닷길이 끊어지고 국가간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또 좁게는 ‘생 활·사회적 거리두기’란 신조어가 탄생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일자리, 사업장은 그 즉시 멈춰버렸고 민간의 주요 경제활동까지 멈춰 세웠다. 문자 그대로 비상(非常)한 조치가 필요한 때이지만 정부 대응은 비상식에 가까워 보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체로 침투할지 모르는 코로나19 앞에 부자나 빈자나 남녀·노소 구분은 무의미하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한국 정부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전국민 대상의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비상 상황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그렇게 비상(非常)한 조치가 보이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재정과 금융 모든 부문이 그렇다. 나라 살림을 꾸리는 재정과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미래로 이어지는 부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안타깝게도 594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엔 이러한 고려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돌려준 세금을 기부금으로 다시 받겠다니

20대 국회를 가까스로 통과한 재난지원금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지출예산을 100% 조정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럼에도 돌려준 세금을 기부금 형식으로 다시 받겠다는 것을 보면 국민 호주머니는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는 오만이 느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2차 추경이 하반기 계획된 3차, 4차 추경에 비하면 그나마 양호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13조7000억원(1차 10조3000억원, 2차 3조4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한 상태에서 3차 추경만 단행해도 국가채무는 850조원에 육박한다. 국채 발행을 기정사실화한 무늬만 경제 살리기 대책이란 반증이다.

국채발행은 증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근로소득 면제자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87%를 내는 이런 나라에서는 어느쪽의 세금을 더 거두느냐 보다 고소득자에 편중된 부담을 오히려 깎아주는 것이 조세형평성 실현을 위한 길이다.

‘빚을 더 늘리는’ 어리석은 대책은 금융부문이라고 다르지 않다. ‘빚을 갚아주는 방식’으로 정부가 고통을 분담하지는 않고 금융지원을 가장한 무분별한 대출 프로그램만 난무하는 양상이다. 또 이런 와중에 코로나19와 관련성이 없는 기업의 숟가락 걸치기도 보인다.

금융지원 가장한 빚 늘리는 대책 우려

문재인 대통령 직접 지시로 최근 금융위원회는 사전적인 위기 차단(Crisis Containment)을 위한 100조원 규모의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회사채 차환 발행 지원(1조9000억원), △기업어음 차환 지원 프로그램(2조원), △회사채 신속인수제도(5조5000억원)가 기업유동성 지원 목적으로 10조원 규모로 구성됐다.

이상의 프로그램은 금융당국이 직접매입에 나서 ‘빚을 먼저 갚아주는 형식’이다. 정부가 고통 분담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나머지 90조 상당의 정채금융이 ‘대출 지원’으로 빚을 오히려 늘리는 정책에 가깝다는 점이다.

7년 만에 시행되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A+등급 이하 회사채 80%를 산업 은행이 총액 인수하고 해당 기업이 나머지 20%를 자체 상환하는 개념이다. 이후 산업은행이 인수분을 주채권은행과 신용보증기금에 매각하는 절차를 거친다. 주로 대기업이 수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반면 중견기업 이하에 적용되는 회사채담보부증권(P-CBO)은 빚을 갚아주는 형식이 아닌 빚을 더 늘어나게 하는 무늬만 지원이다. 신용보증기금이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보증해 신용 등급을 높여준 뒤 이를 시장에서 판매 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제주항공과 진에어를 포함한 국내 저비용항공사 (LCC)들의 지원신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위기극복의 전제조건은 구조조정이어야

코로나19 금융지원의 본래 목적은 이번 사태만 없었더라면 경영을 정상적으로 영위했을 기업의 이른바 흑자도산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굳이 꼽자면 항공·관광·운수업 등 영업이 마비되면서 존폐위기를 맞은 업종에 집중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위기 극복의 전제조건은 구조조정이 아닌 고용유지”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대책을 보면 피해기업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즉 구조조정을 위한 중장기적 로드맵이 없어 무임승차, 이중지원 논란이 불가피 하다.

자원이 부족할 때일수록 은행 중심, 재무 중심의 구조조정 원칙을 철저히 따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최근 산업은행의 두산중공업에 대한 2조4천억 원 상당의 공적자금 지원 계획을 보면 코로나19 위기에 편승한 숟가락 올리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두산그룹이 어려워진 것은 감염증 발발 때문이 아닌 그간 누적된 건설부문 부실과 원자력사업 포기와 같은 명백한 경영실패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은행은 두산그룹이 제출한 자구안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를 진행 중이다. 또 삼일회계법인에서 진행 중인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5월 중 지원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지만 경영실패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지원은 정책금융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불경기시 정책금융이 부실화되면 정부의 추가 재정지출과 이로 인한 공공부채의 증가라는 직접적인 비용이 유발되기 때문에 ‘빚 막아주기식 무조건적 지원’은 철회됨이 마땅하다.

피해기업은 살리고, 좀비기업은 경영진이 책임을

물론 그렇다고 냉혹하게 회사를 망하게 둘 수는 없다. 기업의 구조조정 (corporate restructuring)은 재무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 중 생존가능한 기업은 재무구조를 재조정해서 살리고, 반대로 생존이 불가능한 기업은 청산하거나 재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부실정도에 따라 채권단 자율협약, 기업 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도산 법) 등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산중공업 채권단이 검토중인 자율협약도 기업구조개선작업의 일환이다. 자율협약은 보통 채권액이 500억원미만인 경우에 시행되며 채권은행협의회 운영협약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두산중공업이 올해까지 갚아야할 회사채만 4조2000억원에 달한다. 채권액 500억원 이상의 기업은 기업구조 조정촉진법에 근거한 워크아웃을 통해 기업개선작업이 이뤄진다. 두산그룹은 이런 일반적 기준마저 은근슬쩍 넘어간 것이다.

지난 2013년 자율협약을 신청한 STX조선해양도 8500억원 지원을 합의하는 조건으로 100대1 대주주 감자안을 받아들인 바 있다. 2015년 자율협약이 동부그룹도 경영진 100대1, 소액주주는 4대1을 비율로 하는 감자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김준기 전 회장과 그 특수관계인 지분 36.94%는 1.2%로 감소해 경영권을 상실했다.

이를 두산그룹에 적용하면 지주사 두산에 대한 44.64% 지분을 가진 박정원 회장, 박지원 부회장 등 오너 일가 32명과 특수관계인들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도산법)’이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DIP)’를 두고 있어 지분은 없어도 경영에는 참가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이런 중에 금융위원회는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편성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정부가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원리금을 보증하는 방안이다, 지원 업종은 항공·해상·운송업 등 7개 부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역시 기존의 제도와 충돌을 일으켜 무임승차, 중복지원이 우려된다. 고용노동부가 90%의 고용 유지 조건을 내세우며 구조조정을 원천 차단한 것도 문제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인해 회생보다는 퇴출이 필요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이 연명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해당기업의 경영과는 무관한 국책은행 관계자가 경영권을 갖게 되면서 정상화 가능성이 낮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산업은행이 4번의 매각실패를 겪은 KDB생명이 대표적인 예다.

민간 부분이 극복할 부분에선 정부 손 떼야

코로나19 사태가 이번에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은 초국가적위협 앞에 1~2 위는 부질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발표에만 의존해온 한국 역시 2월 중순 조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코로나 국가’라는 오명을 얻은 바 있다.

한국은 그럼에도 의료·정보시스템에 힘입어 국난 극복 능력을 보여줬지만 언제든지 단기적인 상황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상수(常數)로 생각하고 국가경영에 임해야 할 때다. 금융지원 역시 미래에 대한 대비 없는 부도어음 돌려 막기식은 위험천만한 것일 수밖에 없다.

빚을 더 늘리지 않고 위기를 돌파하는 것은 상식의 문제다. 비상한 상황에서 600억원에 가까운 정책금융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상식적인 판단이다. 상식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쉽지만도 않다. 정부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비상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존폐 위기에 처한 기업을 선별하는 작업을 방해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민간부문이 스스로 극복할 부문에선 손을 떼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불필요한 지출은 저절로 줄어들게 된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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