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 3·4호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자

이종수 서울대 경영대졸. 인포마스터 공공정책컨설팅 본부장. (현)전략과소통연구소 소장.

신한울 원전 3·4호기는 2015년 건설계획이 확정되어 각각 2022년과 2023년 준공 예정이었던 한국형 신형 원전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신규 원전 6기의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경북 울진에 건설 중이던 신한울 3·4호 기는 두중(두산중공업)의 주기기 제작을 포함해 공정률 30%에서 공사가 전면 중지됐다.

건설이 취소된 6기 중 천지·대진 원전 등 4기는 2018년 한수원(한국수력원 자력) 이사회가 건설 취소를 의결했지만, 신한울 3·4호기는 정부의 8차 전력 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됐을 뿐 한수원 이사회 결정은 보류된 상태여서 아직 완전히 취소가 결정된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중단이 아니라 중지 상태이고, 정부가 결정하면 언제든 재개가 가능하다.

관련된 정책 결정도 바뀔 수 있다”며 “국회가 협의해 큰 틀에서 정부의 정책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신한울 3·4호기는 건설 중에 중지돼서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이라는 탈원전 정책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일단, 중단이 아닌 중지니까 재고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정부·환경단체와 야당·원전업계 간의 탈원전 프레임을 둘러싼 지속적인 갈등이다. 이번 21대 총선에서도 미래통합당의 1호 공약이 ‘탈원전 폐기’였다. 중장기적인 국가에너지전략 차원에서 원전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합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탈원전을 계속할 것인가, 포기시킬 것인가 라는 정치공학적인 ‘인식(프레임)의 싸움’이 계속되어 왔다. 결국, 신한울 3·4호기를 살리면 탈원전 정책을 접는 것이라는 인식이 걸림돌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대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해도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원전의 모든 이슈는 기·승·전· ‘탈원전’으로 이어진다. ‘에너지전환’의 방향은 유지하되 (진행 중이던 신한울 3·4호기는 재개하고) 속도를 조절하자는 게 설득력 있는 타협점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탈원전과 신한울 3·4호기 이슈의 밑바닥에는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안전성은 원전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코끼리다. 정확히는 코끼리의 한 부분이다. 코는 탈원전(영화가 생각나고), 다리는 안전성(후쿠시마가 생각나고).. 이런 식이다.

2017년 7월부터 3개월간(짧은 일정이었지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숙의과정에서 일반 국민들도 원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이후 벌써 3년이 지났다. 그간 우리 원전의 안전성과 기술력 등 국제적인 수준은 얼마나 더 나 아졌을까?

중단 아닌 보류, 문제는 탈원전 프레임

공론화 최종발표회가 진행 중이던 그해 10월 한국형 신형 원전인 APR1400 의 유럽수출형 원전인 EU-APR의 표준설계가 유럽사업자요건(European Utility Requirements, EUR) 인증 본심사를 통과했다. EUR 인증은 유럽에 건설될 신형 원전에 대해 안전성, 경제성 등에 대한 요건을 심사하는 것으로 한국 원전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의 3세대 원전인 APR1400은 이어서 지난해(2019년 8월) 프랑스나 일본도 받지 못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미국에서 안전 기준 최종 승인을 획득하여 안전성과 기술력이 입증된 것이므로 올해 확정될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고해야 한다는 원전업계의 주장에 또 하나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2020년 5월, 원전 정책의 정치적 프레임과 안전성 시비를 넘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뉴노멀’의 시대가 닥쳤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그 원인이지만, 늘 그렇듯 위기는 새로운 생각의 기회가 된다.

코로나 위기가 진정국면에 들어선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며 코로나19로 야기된 기간산업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40조 원의 안정기금 조성과, 50만개의 공공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에도 비상한 시기임을 감안해 대승적 합의로 신속한 결정을 부탁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미뤄진 국책사업 추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 언급을 고려할 때 그간 건설을 통한 인위적 경기부양에는 선을 그어왔던 정부가 ‘文정부식 건설경기 부양’을 본격화할거란 관측이 있다. 경제가 ‘전시상황’ 인데 경기 진작 효과가 매우 큰 건설 사업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언론 보도도 있다. 건설투자는 타 산업 대비 투자효과가 커서 전체 산업 평균 대비 120%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 원전 건설도 마찬가지다. 생산유발 및 부가가치창출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큰 사업이다.

신한울 3·4호기를 ‘코로나19 국난극복’을 위한 경기부양 카드로 쓰면 관련부처에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한국판 뉴딜정책의 효과도 당연히 제고될 것이다.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국판 뉴딜사업에 대해 “대규모 토목공사 개념에서 벗어나 디지털 경제 전환과 4차 산업혁명 대비, 코로나 이후 연결되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라고 발표한 바 있다. 문 대통령도 기존 도시 인프라에 AI(인공지능)와 ICT(정보통신) 기술 등을 도입해 새로운 기간산업 분야를 발굴하는 스마트 시티 사업을 예로 들기도 했다. 사실 원전 산업의 기술적 트렌드도 마찬가지여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반의 원자력 플랜트 시뮬레이션 등 디지털 전환 및 AI·ICT 4차 산업 분야와의 융·복합 관련 연구 개발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되면 신한울 3·4호기를 한국형 ‘디지털 원전’ 의 성공사례로 만들어보자. 시민참여형 사업 추진으로 관련 전문가와 국민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수준의 안전성과 경제성, 그리고 환경까지 고려한 까다로운 주문을 하자.

한국형 뉴딜정책에 신한울 3·4호기도 함께

사실 원전 산업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는 1956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영국 콜더홀 원자력발전소 이후 60여년,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이제 40여년 밖에 안 되었다. 1886년 ‘말없이 달리는 마차’를 만들겠다는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에서 시작하여 2006년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첫 전기차 모델인 로드스터까지 120여년간 성장해온 자동차 산업과 비교 하면, 한국 원전 산업은 1/3 정도의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원전 및 원자력의 활용 영역과 타 산업과의 융·복합 추세까지 고려할 때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중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미래형 산업이다.

최근 발간된 폴 크루그먼 등 세계적 석학들의 공동저서 「코로나 경제전쟁」 에서 오바마 행정부 경제자문위원장이었던 제이슨 퍼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극적인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제시한다. 1) 부족 한 것보다는 과도한 것이 낫다. 2) 가능한 기존 메커니즘을 활용한다. 3) 필요한 경우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4) 대책을 다양화하고, 혜택의 중복 지원이나 의도하지 않은 ‘수혜자’가 발생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5) 가능한 민간기업의 협조를 얻는다. 6)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상경제 시국의 정책적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세 가지만 생각해보자. 먼저, 신한울 3·4 호기 건설 중지로 타격을 받고 있는 두중과 중소 협력업체들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두중은 2016년 8조원을 웃돌던 신규 수주액이 작년 3월 분기 말 기준 2조 1,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지에 따라 주기기 제작을 위한 설계, 소재제작, 자재구매 등 투자를 포함한 매몰비용이 7,00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원자로 등 핵심 기자재를 공급하는 두중은 신한울 3·4호기 건설만 재개해도 2조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되어 향후 사업구조 개편을 위한 시간을 3년 정도 벌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이 가능하다. 1조원의 긴급 자금 수혈로는 부족한 두중의 자금조달에 숨통이 트이고 지역경기도 살아날 것이다.

원전산업의 기초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일감 부족도 한계에 왔다.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가 2021년 준공되고, 신고리 5·6호 기가 2024년 준공되고 나면 수주절벽 앞에 서게 된다. 작년 두중의 1,000여 개 협력업체들이 신규로 계약한 건수는 전년 대비 46% 감소했고, 올해 말 신 고리 5·6호기 납품이 마무리되면 내년엔 다수 업체가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에너지전환은 중장기적으로 불가피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급격한 정책 전환의 후유증을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이 겪게 하는 건 문제다.

정책의 수혜자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고려해선 안 돼

다음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로 최소한의 원전 생태계가 보호되면 정부가 바라는 원전수출도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다. 블룸버그는 2018년 약 25조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서 예비사업자로 선정된 한국·미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국의 원전 경쟁력을 비교·분석 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이 UAE에서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것을 장점으로 언급한 반면, 약점으로 정부 지원이 불투명(unclear)하다고 지적했다. 2009년 UAE에서 원전 4기 건설 수주 이래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수출 강대국 대열에서 탈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한국형 뉴딜정책이 해외로 알려지면 원전 수출 ‘팀코리아’의 이름으로 정부가 꿈꾸는 ‘원전 수출 강국’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끝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이번 21대 총선의 지역별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포용의 정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달 두중 노조와 창원상공회의소는 “창원 지역이 주력산업에 불어닥친 수요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서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그마저 남아있던 생산마저 차질을 빚고 있어, 지역경제는 낭떠러지 앞에 놓인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지역의 호소에 어떤 정책으로 답을 주는가는 그 정책의 수혜자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따지지 말고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면 미국 대공황을 극복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 정책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한국형 뉴딜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다.

보스턴컨설팅연구소는 이번 코로나 위기 이후 ‘회복 탄력성’의 마중물(키워드)로 소통·혁신·상상력·협업·도전을 제시했다. 정부와 원전업계도 다시 소통하고 혁신하는 자세로 협업해 21세기 에너지강국을 향한 위대한 도전까지 함께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외신이 “한국은 방역 모범국을 넘어 정치·경제 혁신 모범국으로 가고 있다”고 보도하는 그날을 기분 좋게 상상해보며..

– 이종수

지구와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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