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에너지

서성동 (1946년생) 한국사회연구소 회장. 우농서원 이사장. 지속 가능한 가치를 구현하는 슬기로운 여성, 실현 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깨어있는 청년, 원칙과 상식을 지향하는 정의로운 시민들의 행동을 늘 성원하는 대한민국의 할아버지.

1.

사람은 살아있는 물체다. 공간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감각으로써 그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 물질과는 달라 항상 그 형상과 대소를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지각과 정신이 있는 유형물로써 깊이, 너비, 높이의 3차원에 의하여 공간을 차지한다.

사람이 물리학적, 정신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에너지에서 나온다. 그 에너지는 원기이자 정력이다. 그 일의 양으로써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고, 에너지의 형태에 따라 운동 · 위치 · 열 · 전기 등 각 에너지를 구분한다.

생체에 있어서, 물질 대사와 관련되어 행하여지는 에너지의 출입 반환을 에너지 대사라 한다. 사람은 이 화학적 에너지를 변화시켜 체온을 유지하고 운동을 한다. 에너지는 본질을 이루는 정精 · 기氣 · 신神이라는 3가지 속성이 있다.

정精은 에너지의 혼이자 영혼이다. 마음이자 정신이고, 생식의 원기이자 원질이다. 날래고 날카롭고 예리하다. 익숙하고 숙련됐고, 정성스럽고 성의가 있다. 순수하고 깨끗하며, 오묘하고 미묘하다. 자세하고 세밀하다.

기氣는 정精의 흐름이다. 만물 생성의 근원이자 만유의 근원이다. 심신의 세력 원기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을 하며, 천지간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또한 수증기 연기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또 냄새, 열 같은 감각으로 그 존재를 아는 현상이다. 숨이자 호흡이고, 기질이자 마음이다. 변하고 흐르는 것이다.

신神은 영묘하고 신비스럽다. 또 변화무쌍하다. 정수한 기운을 가진 혼이자 영혼이다. 마음에 따라 펴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곱게 한다. 기의 흐름에 방향을 정한다. 만물은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에너지는 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생물이란 에너지가 움직이고 흐르는 것이다.

2.

사람의 가치와 향기는 에너지를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에너지는 사람이 땅에 두 발로 꼿꼿이 서서 다니게 하고, 말과 글 그리고 기구 따위를 만들어 쓰게 하는 등 이지적이고 도덕적인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다.

에너지의 정 · 기 · 신이 온전히 작동하면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자연인으로써,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인격자로써,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선량한 사람이 된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사람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건강한 기회와 필연적인 차이를 인정하면서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올바르게 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외계의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사작용이 아닌 마음에 의하여 환경에 작용하고, 환경으로부터 작용을 받는다. 동물에게도 의식과 비슷한 것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반성하는 정신으로서의 의식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아는 의식, 자신 밖의 타자와 세계를 아는 의식이다.

사람은 자각할 줄 아는 존재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고독을 의식한다. 사람은 고도의 개성을 갖추고 있다. 자주적 존재로서의 인격을 이루고 있고, 자주적으로 행동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다. 독립해 있으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상호 의존한다. 수직적 배타적 개인적 에너지에서 수평적 포용적 사회적 에너지로 이동해야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3.

사람에게는 탐욕貪慾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가 있다.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 즉 탐 · 진 · 치는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과 같다.

탐욕貪慾은 탐애라고도 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 자기의 뜻에 맞는 일에 집착하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욕심을 부리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5욕이라고 하여 식욕 · 색욕 · 재욕 · 명예욕 · 수면욕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구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 아니다. 그것이 정도를 지나칠 때 탐욕이라고 한다.

진에瞋恚는 분노하는 것으로서, 산 목숨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에 속에는 분노 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진에는 수행을 하는 데 가장 큰 허물이 되는 것이며, 다스리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우치愚癡는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마음으로서, 이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치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삼독은 모두 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 스스로에 미혹한 것이 우치이고, 그 우치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으면 탐욕을 일으키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진에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삼독을 없애기 위한 수행으로는 바른견해正見 바른생각正思惟, 바른말正語, 바른행동正業, 바른생활正命, 바른노력正精進, 바른인식正念, 바른정신正定의 팔정도八正道와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三學을 들고 있다. 즉 계로써 탐욕을 다스리고, 정으로써 진에를 다스리고, 혜로써 어리석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4.

순자荀子의 유좌편宥坐篇에는 공자가 황하를 굽어보다가 제자인 자공의 질문을 받고 물의 아홉 가지 덕을 설명한 소위 구덕론이 나온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이기 때문에 황하를 비롯한 대부분의 강은 동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는데, 공자가 살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의 강역彊域에서는 동쪽으로 흘러가지 않는 강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에서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성어成語가 유래되었다.

물은 모든 생명들에게 두루 주면서 만물을 키우지만 얼핏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하니 덕 德과 같다.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순리와 법칙을 따르니 의義와 같다.

한 없이 흐르지만 마름이 없고 끊이지 않으니 도道와 같다.

막힌 곳을 뚫고 백 길이나 되는 계곡으로 떨어지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용勇과 같다.

어디든 채우고 기울이지 않으니 법法과 같다.

공간을 채워도 한 점 빈 곳을 남기지 않으니 정正과 같다.

연약하고 작지만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찰察과 같다.

물질을 씻어 정갈하고 아름답게 하니 교敎와 같다.

만 번을 굽어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가니 지志와 같다.

공자는 이것이 군자가 물을 관찰해야 하는 아홉 가지 이유라고 말했다.

아무리 요동을 쳐도 결국은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물의 구덕을 사람의 에너지로 치환하면 삶이 더 지혜롭고 활기차지 않을까.

– 서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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