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은 과연 근대화의 축복인가

조명희 상명대 겸임교수. 상명대 연구원. 숭실대, 강동대 등 강사 역임. 국민대 교육학 석사, 상명대 교육학 박사.

1952년 이집트에는 민족주의적 혁명을 표방하는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가 말 나세르(Gamal Nasser 1918-1970)와 동료 군인들이 이끄는 쿠데타가 성 공한 결과였다. 나세르는 오스만튀르크와 영국의 지배하에서 무기력하게 운 영되어 왔던 이집트 정치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우선 군주제도를 없애버렸 다. 그리고 농지 개혁이 이루어졌다. 봉건체제의 유산이었던 대규모 소작제도 가 ‘경자유전’(耕者有田)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나세르는 농업 생산성이 절대 적인 이집트가 농민들을 가난에서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절대 부강한 국가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땅을 직접 갈아먹고사는 사람들 이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었다. 상당히 사회주의적인 정책이었지 만 당시에는 매우 인기 있는 정책이었다. 공교롭게도 1948년 출범한 대한민 국의 이승만 정부도 경자유전의 원칙을 선포했다. 조선시대 이래 대지주가 땅 의 소유를 독점하면서 직접 경작자인 소작인들을 끊임없이 가난의 골로 접어들게 만드는 악순환을 깨기 위한 것이었다.

이 원칙이 지켜지려면 개별 경작자들의 물 이용 인프라를 정비해 줘야 한 다. 대규모 농장제에서는 지주가 투자해 관개 시설을 만들면 나름대로 물 관 리 대책이 되었지만, 경자유전의 원칙하에서는 범국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자원 인프라가 절실하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집트는 농업 물 관리 과정 에서 나일강의 홍수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했다.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발 생하는 ‘몬순 비’는 늦여름 이집트 홍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영양분이 풍부한 실트가 나일강과 지중해 연안의 삼각주까지 풍성하게 내려 와 적절한 농업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홍수는 ‘복불복’의 효과도 갖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고원 일대에서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나일강이 넘치게 되면 그 해 농사는 거의 전멸이었다. 나세르는 이것을 극복하고 농업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물을 예측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기획된 것이 바로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 dam)이다.

아스완 하이댐의 북부 전경

이집트 조국 근대화의 유산, 아스완 하이 댐

아스완 시는 이집트 나일강의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약 21만 명(2016년 기준) 규모의 주도(州都)다. 고대 이집트 왕국 시절 아스완은 에티오피아, 수단 등에서 난 산물을 배로 실어 날라 나일강을 통해 멤피스나 알렉산드리아 등으 로 운반하던 물류 요충지였다. 나세르 정부는 이 아스완 일대에 거대 규모의 댐을 건설하기로 했다. 영국이 1889년 시작해 1902년에 기공식을 했다가 지 지부진했던 공사였다. 아스완 하이 댐의 규모는 길이는 3830미터, 기본 구조물은 900미터에 이른다. 매초 1만 1000 세제곱미터의 물을 내보낼 수 있는 엄청난 댐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세르의 아스완 하이 댐은 이집트의 고질병이었던 나일강 홍수를 해결했 다. 이 때문에 이집트는 인구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강 일대에서 농사를 짓 는 영세 농민들도 손쉽게 물을 가져다 쓸 수 있는 풍토가 되었다. 나세르가 이 댐을 지으면서 아주 기가 막힌 일화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 왕국 시대 람세스 2세가 지은 ‘아부심벨 대신전’이 댐 공사로 인해 물에 잠길 뻔한 것이다. 나세 르는 “서방 세계가 우리에게 이전 비용을 주지 않으면 이집트 최고의 유적이 물에 잠긴다”라고 선진국들을 을러 댔다. 결국 유네스코가 모금한 끝에 여러 국가들이 아부심벨 신전의 석조(石彫) 유적들을 잘게 잘라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아스완 하이 댐 공사 총감독을 맡았던 오스만 아흐메드 오 스만이 유적 발굴 작업까지 주도했다. 물론 모든 유적들을 다 댐 밖으로 옮길 순 없었다. 아직도 아스완 하이 댐 내 ‘나세르 호’ 바닥에는 수천 년 전에 만든 조각들과 유적들이 물 밑에서 잠자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군사 정권 시절 댐 구비 과정에서 몇 번 있었다. 물론 홍수 방지와 안정적인 물 공급 이라는 미명 하에 넘어가야 하는 근대화 과정으로 자주 거론되었다.

댐 건설로 인한 부작용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있었다. 댐 건설로 인한 부작용 탓이었다. 국 경을 넘는(transboundary) 환경 정치 문제가 생겼다. 나세르는 댐 건설 이 후에는 수단 정부와 나일강 물을 나눠 쓰기로 했었다. 그 과정에서 북수단에 살던 누비아(Nubia) 인들이 자신들이 살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들은 약 4천 년 전부터 청동기와 토기를 바탕으로 부강한 문명을 일구었고, 기원 후 14세기까지도 왕국을 운영하던 흑인 문명이었다. 나세르와 같이 군사 쿠 데타로 집권한 수단 정부는 역시 대량의 물을 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아 스완 하이 댐 공사에 동의서를 써 줘 버렸다. 거대한 누비아 유적과 농토들이 강에 잠기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댐이 건설되면서 물이 가둬지는 형국이 되자 나일강 남부에 서 북쪽으로 자주 운반되던 ‘실트’가 더 이상 내려오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 해 강에 유통되는 영양염류가 줄어들면서 내륙 어업에도 지장이 생겼다. 약 3 만 명의 이집트 내륙 어업 종사자들이 아스완 하이 댐으로 인해 먹거리를 잃 어버렸다. 나일강의 홍수는 농민에게 피해를 가져다주는 부정적 효과 이외에 여러 유해 물질과 해충들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댐 건설로 인해 그것 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나일강 유량이 전체적으로 감소하면서 인접 도 시들의 환경은 더욱 팍팍해졌다. 매년 건조하고 더운 기후로 인해 6분의 1에 가까운 유량이 증발해 버리는 데다 지하수 공급도 원활하지 않게 되었다. 약 10여 년에 걸친 세월 동안 댐을 이용한 경제 개발로 인구가 증가했지만 댐 건 설 후 악화된 환경 때문에 고스란히 그 피해를 보는 어지러운 상황이다. 지중 해로 유입되는 나일강 물이 줄어들면서 하류 삼각주 지대의 염분도 상당히 높 아졌다. 자연히 어류들의 생존율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현재 이집트 인구 의 90%인 9천만 명이 나일강 주변, 특히 하류 지역에 모여 살고 있다. 수단과 이집트 정부가 체결한 ‘풍부한 물’을 전제로 한 나일강 용수 공유 계획도 없는 셈 쳐야만 하는 판이다. 2000년대 이후부터 이집트는 더 이상 나눠 줄 나일 강 물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에티오피안 르네상스 댐

나일 강물로 일어난 전쟁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력 한 미래 전쟁 시나리오는 나일 강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이라고 예견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에티오피아가 아디스아바바로부터 500킬로미터 북부에 있는 베니샹굴구므즈 지역에 짓고 있는 ‘그랜드 에티오피안 르네상스 댐’ 때 문이다. 이 댐이 만들어지면 나일강 전체에 공급되는 물의 양이 줄어들면서 이집트, 수단 지역의 주민들이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다. 강의 유량 감소로 인한 자체 정화 능력의 상실도 큰 문제다.

그랜드 에티오피안 르네상스 댐은 높이 155미터, 길이 1780미터에 달하는 거대 댐이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33억 9700만 유로의 규모에 이르는 댐 공사 를 이탈리아의 살리니 임프레질로(Salini Impregilo)라는 수자원 회사에 맡 겼다. 이 댐이 완공되면 보관할 수 있는 물의 양도 740억 세제곱미터, 발전 용량은 6천 메가 와트 가량으로 예측된다. 1년에 생산 가능한 전력량은 1만 5천 기가 와트 가량이다. 댐 완공으로 인해 에티오피아 북부 일대에 원활한 전력 공급과 용수 공급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이 해당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댐이 만들어지고 물을 채우는 과정에서(약 12년간) 점진적으로 나일강 물이 줄어들게 되면 하류에 위치한 이집트인들에게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나일 강 높이가 2%만 낮아져도 809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농경지가 사라진다는 것이 이집트 정부의 계산이다. 수단 정부도 에티오피아의 댐 건설로 인해 피 해를 보긴 하지만 “대규모 전력 시설이 들어서기 때문에 싼값에 전기를 구매 할 수만 있다면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결국 나일강 물을 둘러싼 전쟁은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간의 싸움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나일강 전 체 수량의 86%가 시작되는데 이집트는 아스완 하이 댐을 비롯해 자국에 유리한 수자원 공사만 했을 뿐, 인접 국가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 히려 이집트는 과거 제국주의 열강 세력과 조약을 맺어 나일강에 대한 독점권 을 행사하는 형태로 인접국에 갑질을 해왔다. 1929년 이집트의 마흐무드 파 샤 대통령은 조지 로이드 영국 대사와 ‘나일강 분할 조약’이라는 것을 맺어 나 일강에 대한 독점 이용권을 따냈다. 이 당시 조약 내용에 따르면 나일강의 수 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만한 댐 건설이나 관개 시설을 만들 때에는 반 드시 이집트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또 1959년 이집트는 수단과 조약을 맺어 나일강 유량의 75%를 이집트가, 15%를 수단이 점유하고 10%는 고온 건조한 기후 등으로 인해 증발하는 셈 치기로 했다. 다시 말해 나일강의 발원 지인 에티오피아나 부룬디 같은 국가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 안 된 ‘땅따먹기 식 수자원 조약’으로 갑질을 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에티오피 아가 대규모 댐 건설을 통해 그동안의 울분을 만회하려고 하는 것도 전혀 근 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 간 환경 정치 분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집트는 만에 하나라도 나일강 물 부족 사태가 본격화되면 에티오피아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간의 갑질이 있기 때문에 주변 국 가로부터 쉽게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에티오피아 입장 에서도 전혀 장애물이 없는 게 아니다. 지난해(2018년) 7월 에티오피아의 아 디스아바바 시내에서는 르네상스 댐 시공 책임자인 시메그뉴 베켈레가 자신 의 차량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어 죽은 채 발견됐다. 에티오피아 당국은 사실 상 이집트나 댐 건설을 반대하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주로 인해 베켈레가 죽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한 세기를 이어 온 나일강 물 분쟁은 이 제 서로 간의 테러와 물리적 공격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개발 도상국 간의 물 분쟁은 국제기구나 인접 강대국이 나서 중재해 주기에는 너무나도 골이 깊고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그랜드 에티 오피아 댐을 시공하고 있는 살리니 임프레질로의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는 한때 ‘동아프리카 제국’(Africa Orientale Italiana)이라는 괴뢰국을 만들어 5년(1936년~1941년) 간 운영했던 경험을 갖고 있지만 2차대전 후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렇다 할 만한 활동 경과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나일강 물 분쟁에 관심을 가질지도 미지수다. 1960년 당시 나세르 는 소련의 원조를 받아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냉전구도가 사 라져 이집트-수단-에티오피아를 잇는 북아프리카 일대를 ‘서방 진영’ 차원에 서 관리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에티오피아와 이집트가 물 분쟁을 보다 원만하게 처리할지가 주목된다.

한국 환경 정치에 제공하는 시사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댐 사례는 육지로 국경을 접하지 않는 우리나라 입 장에서는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댐이 전반 적인 강의 수질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자체로만 놓고 보면 많은 시사점이 있 음을 확인 가능하다.

한국도 에티오피아나 이집트처럼 개발도상국 당시(70~80년대)에는 다양 한 규모의 댐을 지어 왔다. 그 과정에서 수몰지 문제, 댐의 수질 문제 등이 지 속적으로 대두되어 왔고 최근 2019년에는 아예 댐 철거 담론도 조금씩 나오 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영주 댐이다. 이 댐은 상류에 많은 농경지를 갖고 있어서 늦봄이나 여름철만 되면 녹조와 부영양화가 매우 심각한 곳이다. 안동 댐도 마찬가지다. 하천 부지 내 수몰민을 위한 경작지 등이 허용되면서 수많은 농약 침출수, 비료 침출수가 강을 오염시키고 있다. 나일 상류에 위치 한 아스완 하이 댐이 실트의 상실과 수변 환경 악화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면, 국내에 위치한 댐은 상류 수원(水源) 자체가 깊이 썩어들어 가고 있다. 이로 인해 댐이 강 상류 주민들과 하류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무분별한 댐 건설로 인한 부작용들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논 의하고, 더 나아가서 관련 당국의 책임 있는 입장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서 는 댐 때문에 나라 간에 전쟁이 날 지경인데,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수자원공 사를 비롯해 누가 책임졌다는 것인지 명확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댐은 정말로 근대화의 축복이기만 했는가? 아니면 재앙도 함 께 안고 있는 불덩어리인가. 계속해서 고민해 볼 일이다.

– 조명희

지구와에너지
(사)한반도평화에너지센터가 발행하는 신개념의 컨설팅형 입법정책 계간지 매거진 '지구와에너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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