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론의 허구

김도환 환경사진작가

정말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중시하는 사람이 라면 ‘인간계’ 안에서도 모종의 화해를 고민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필자 는 20년간 환경운동에 종사하면서 화합보다는 분열을, 균형보다는 편파적인 자세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때때로 그들은 문제가 남아 있어 야 역할이 계속되는 사람들인 것처럼 처세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은 환경 미디어 운동이 아니다. 정부나 기업, 언론이 외면한 사각 지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할 수 있게끔 계속 해서 요구하고 고민하게 하는 촉진제다. 그런데 이 환경운동이 극단화가 되면 서 ‘탈 성장 운동’으로 변모한다. 자극적인 말과 글은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기 에 좋고, 활동가를 단숨에 오피니언 리더의 지위로 올려놓기도 쉽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면 환경운동가 본인도 한 가지 커다란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그 자신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자동차를 이용해 이동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는 생태 근본주의적인 삶의 모습을 강요하는 셈이다. 결국 ‘극단 진보’의 모습에 질려 버린 대다수 대중들의 냉소와 야멸찬 시선만 이 남는다. 나는 이런 ‘탈 성장운동가’들의 처세가 환경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주류 내 소수’의 입장으로 머무르게 한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탈 성장론’의 허구성

몇몇 정치인들과 진보 언론, 그리고 환경 운동가들은 ‘탈 성장론’을 이야 기한다. 과거 미국 중심의 경제 성장 담론에서는 끊임없이 시장이 성장해야 만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여지가 열리는 것처럼 이야기되었는데, 고도로 발달된 문명사회가 되면서 성장보다는 만족과 분배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 다. 이를 가리켜 프랑스의 사회학자들은 ‘디크라상스’라고 이야기하며, 영어 로는 ‘디 그로스’(Degrowth)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른바 ‘탈 성장’(脫成長) 담론이다.

최근 들어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롯해 ‘친환경 운동’ 성향의 언론사들은 탈성장 담론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공업화 과정은 우 리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공해가 일상화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진보 필자들과 운동가들은 과 감한 탈 성장론을 통해 이제 ‘더 잘 살자’는 집착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게다가 경제 자체가 저성장 국면으로 가고 있으니, 이를 인정해 버리고 ‘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호들갑 떨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녹색 평론의 편집장이자 영남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종철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 다. 국내 경제 성장률이 3%대에 미치지 못하는 ‘지속적 저성장’ 국면이 되면서, 탈 성장론자들은 점점 큰 힘을 얻고 있다. 어떤 공장이 환경 규제를 위반 했다면, 그 공장이 갖고 있는 경제 생태계적 영향보다는 공장의 조업 정지나 영업 허가 취소를 통해 ‘탐욕을 멈추는 길’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 의 탈 성장론이다.

또 그들은 ‘숫자’가 매우 정치적이라고 주장한다. 계량적으로 사회 발전의 수준을 가늠하던 것은 지극히 근대적인 ‘데카르트 주의’로 욕을 먹기도 한다. 환경론자들은 환경 보전 정책과 성장 억제 정책으로 인한 경제사회적 긍정 효 과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 반대 방향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불편한 통계 수치가 나오면 ‘거짓말이다’ 또 는 ‘자본의 논리에 매수된 국가의 농간’이라고 욕해버린다. 경제계에 종사하 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일 수밖에 없다.

탈 성장론자가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역설

탈 성장론을 외치는 시민단체나 진보 운동가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공교롭 게도 이들은 환경부를 비롯해 국가 기관이 곳곳에 풀어 대는 재정 지원을 통 해 먹고살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018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조사 한 자료에 따르면 4대강 반대 운동을 감행했던 상당수의 환경 진보 단체들이 2017년, 2018년 들어 ‘수질 보전 감시 활동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주류 환경 단체들의 자매기관이 거나, 몇몇 운동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만든 ‘분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들은 환경부로부터 R&D 용역 연구를 수행하거나, 홍보 사업 등을 수주함으로써 자신들의 운영 자금을 충당한다. ‘탈 성장’을 외치면서 기업들에 대한 규제와 공격을 일삼는 환경론자들이, 정작 기업과 시민들이 낸 세금 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모습,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탈 성장론은 멋이 있지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경제는 항상성(恒常 性)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탈 성장론은 그들의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만드 는 무시무시한 담론이다. 특히 경제성장률에 강하게 연동되어 있는 제조업과 금융업 등에서는 탈 성장론자들의 존재 자체가 매우 거슬린다고 볼 수밖에 없 다. ‘4 대 강 재자연화’ 수혜주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정작 ‘4 대 강 재자연화’ 자체에는 크게 찬성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도시 주변에 위치한 강 유역이 황 폐화될 것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 성장론자들은 사실상 시장의 입장에 서 가장 큰 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운동 단체들은 계속해서 국가의 지원금에 의존해서 살 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온전한 슬로건이 아니라, 국 가 기관이 기대하는 메시지들을 설파하는 어용 단체로 활동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행정안전부 공익사업위원회와 환경부 시민단체 지원 사업의 수혜를 입었던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지속가능발전 센터, 대한상하수도학회, 물관리학회 등은 ‘물 관리 일원화’ 정책을 강력하게 외쳤다. 과거 국토교통부 산하에 있던 물 관리 관련 기관들을 전부 환경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4 대 강 재자연화’를 염려하는 보수 정당 국회 의원들이 반대하는 법안이기도 했다.

게다가 환경 보전보다는 개발을 통한 가치 향상을 더 중시하는 한국 경제 당 국의 특성상, 진보 환경 단체들의 물 관리 일원화 주장은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8년 5월부터 6월까지, 지방선거 이후 여야(더불어민주당 과 자유한국당) 간 구도가 묘하게 흐르면서, 물 관리 일원화법이 주고받기 식으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많은 진보 환경 단체들이 원하는 대로 수자원공사와 국토교통부 산하의 수자원 정책국 기능이 환경부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수자원 관리 기구의 환경부 이관이 반드시 ‘친환경 정책’이라고만 볼 수 없는 측면도 많다. 가령 수자원공사는 친수공간(waterfront) 개발과 함 께 수상 태양광 발전소 사업 등 환경 단체들이 별로 편안해 하지 않는 일들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특히 수자원공사는 국토교통부 산하에서는 ‘수질’보다 는 ‘수량’의 문제에 더 민감한 공공기관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었다. 댐이나 저 수지 등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각종 지역 토목 자본들이 연계되어 이해관계 로 얽혀 있었다. 이러한 ‘카르텔’에 대하여 매우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환 경단체들이, ‘물 관리 일원화’라는 정치적 슬로건을 외치게 된 것 또한 매우 역설적인 사실이다. 전통적인 사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탈 성장론자들이 말이다. 과연 환경단체는 국가가 허용한 또 다른 ‘태극기 부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탈 성장 완성론자들이 될 것인가.

지방 소멸로 인한 탈 성장론의 한계

그러나 필자들은 탈 성장론은 농업 문명과 산업 문명 간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간질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환경 보전 운동의 현장인 지방 도시들이 계속해서 소멸해 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개발론 이 더 큰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현재 지방 중소도시들은 거의 공동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 령화, 그리고 저성장으로 인한 경제 시스템의 적체 현상이 생기면서 일자리 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지방에서는 점점 인구 수가 쪼그라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장성광업소를 비롯한 100여 개의 광산이 운영되고 있었던 강원도 태백시가 대표적이다. 이 지자체는 광공업이 저물어 가면서 인구가 5만 명 이하로 떨어 져 있는 ‘한국의 디트로이트’나 마찬가지다. 한때 미국 오대호 연안에서 가장 발달했던 공업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 불경기가 미국에서 본격 화되면서 주민 평균 수입이 2만 달러 중반대로 곤두박질쳤다(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디트로이트 주민의 평균 수입은 가구당 5만 달러에 달했다). 게다가 가계소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디트로이트 시의 재정이 악화되었고, 도 시공원의 70%가 폐쇄되고 신호등이나 가로등과 같은 것들이 기능을 상실하 는 엽기적 현상이 벌어졌다. 디트로이트는 결국 2013년 도시 전체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버리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아비규환인 셈이다.

태백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소비 구조의 전환으로 인해 석탄 생산자들이 경 제적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태백시’가 지금은 거의 군(郡) 수준의 인구로 쪼그라들어 버렸다. 태백 주민들은 한때 서울 부럽 지 않은 경제 수준을 갖고 있었다. 광업소 인근에서 포목점을 하던 필자들의 지인은 70년대 당시 태백에서 크게 돈을 벌어 서울 강남에 집을 세 채나 살 정 도였다. 한때 태백시 장성읍 일대는 인구가 12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매우 활성 화된 도시였다. 60년대에는 한국전력이 강원도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영월 상동 주변의 텅스 텐 광산과 대한 중석 본사, 태백의 석탄공사, 70년대에 지어진 봉화군 석포제 련소 등은 이 지역 광공업의 영화를 상징하는 시설들이었다.

그러나 인구 4만 명 대의 태백은 2021년 장성광업소 폐업을 앞두고 사실 상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 활성화 시대의 기준으로 소비 물가는 올라 있지만, 주민들이 먹고 살 만큼 제대로 된 소비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택시 기사들이나 버스 기사들도 ‘태백에서 먹고살기 어렵다’고 호소할 만큼 경제적 위축이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태백은 약 2200억 원 가량의 도시재생 예산을 받았다. 이른바 폐광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교부 된 지원금이다. 그러나 도시를 삐까뻔쩍하게 바꾸더라도 인구는 좀처럼 늘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0년의 세월이 입증했다. 인구 감소와 도시의 쇠퇴 는 ‘일자리 위기’에서 시작된다. 산업이 망가지고, 젊은이들이 중소도시가 아 니라 수도권 인근의 대도시로 몰리고, 이주 가능성이 많지 않은 50대 이상의 인구가 많아지는 도시. 이런 지역들이 현재 ‘환경이 중요하다’는 지방 도시들 의 현주소다.

귀농으로도 못 잡는 과거의 영화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지방을 살려 보고 싶어 한다. 귀농, 귀촌 지원 사 업이 본격화되면서 2018년 기준으로 5만 명에 달하는 귀농자들이 발생했다 는 통계 결과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저리의 창농 지원 자금이나 은퇴 후 별 다른 재취업 기회가 없어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물론 때에 따라서는 청운의 뜻을 품은 청년 창농인도 존재한다). 그러나 귀농자들 상당 수가 지역 사회에서의 텃세를 못 이기거나,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리기가 힘들 어 다시 도시로 떠나거나, 아예 귀농 이후 삶의 기반을 농사 본업이 아닌, 다 른 부업에서 찾는 경우가 많아진다. 물론 여유가 있는 몇몇 귀농, 귀촌자들 의 경우에는 아예 삶의 기반을 도시에 두고 거주지만 시골에 두면서 살아가 기도 한다.

농업 문명과 산업 문명이 대결하는 장(場)인 시골 살이는 귀농자들에게 절 대 만만하지 않다. 이들이 대도시에서의 소비 수준만큼 먹고살기 위해서는 농 사 매출로 3배에 가까운 성과를 올려야만 순수입 확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 리나라 농민들 중에 연 매출 1억 이상 올리는 농민은 전체 농민의 10% 미만 에 지나지 않는다(2018년 기준으로 200만 명 가량의 농민이 존재한다는 통 계를 기준으로 하면, 약 2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순소득은 매출의 3 분의 1인 약 3천만 원이라고 보면 된다. 은퇴 후 2인 가족 수준에서 살아가기 에는 어렵지 않은 수준일 수 있지만, 도시 근로자들이 벌어먹고 사는 수준보 다는 못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농촌에서 먹고 살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생태 농업’ 내지는 ‘친환경 농업’을 주장하는 것도 매우 배부른 소리다. 환경론자들이 그토록 주 장하는 맥락대로 “공장을 없애면 그 촌 동네가 다시 생태적으로 살아나고, 지 역에 물고기와 새들이 돌아오면서 아름다운 생태 관광 코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동화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일뿐이다.

차라리 ‘기업 반성 운동’을 시작하자

한 쪽에서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떠나가는 제조업 시설을 막고 있는데(경 북 지역의 구미, 전남 지역의 광주, 화순 등), 다른 쪽에서는 환경 단체들의 맹 렬한 활동으로 인해 제조업 시설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는 상황(경북 봉화의 영풍 석포제련소가 대표적이다)이다. 바야흐로 지방 소멸 시대의 제조업 박해 라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30년 내로 없어지기 쉬운 지자체 중 하나로 꼽힌 경상북도 의성군은 주민들의 육아를 권장하기 위해 둘째 자녀부터 출산지원금을 제공하는 정책을 쓰 고 있다. ‘6차 산업 수도’를 자임한 상주 지역은 최근 40년간 인구 감소율이 56%에 달한다. 상주는 곶감, 오이, 포도 등 고소득 작물이 70여 종이나 되고 2016년 기준으로 농업 총생산이 1조 2천억 원에 달하는 지자체다. 그러나 농 가 소득은 2145만 원 수준(1가구당)으로 경상북도 전체 평균인 3700만 원 에 훨씬 못 미쳤다. 농사를 지어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지방 소멸’의 상황 때문이다.

오히려 농업보다 생산 유발계수, 취업 유발 계수가 높은 제조업들은 완전한 박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당에 소속되어 있는 모 국회의원은 “2018 년 국정감사에서 영풍 석포제련소의 영업 허가 취소 내지는 폐쇄까지도 염두 에 두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제련소가 지역민들을 1200명이나 고용하 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환경운동 단체 는 제련소 소속 노동자들을 관광 사업이나 다른 형태로 ‘고용 승계’를 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분야는 제조업에 비해 취업 유발 계수가 현저히 낮으며,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질 지도 미지수 인 상황이다. 지방 소멸 시대의 제조업 박해는 이렇게 무지막지하고 비참하 다고 볼 수 있다.

– 김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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