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공론화, 이대로는 안된다

노봉호 부산경제산업연구원장. 대구 대경대 교수 역임. 민주평통 종교 상임간사 역임. 미국 머시 칼리지 학사. 프랫 인스티튜트 석사.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한국 사회에서 공공기관이란 ‘절대 권력’을 의미하면서도 ‘절대 무능’을 뜻 하는 단어처럼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특히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 분야일수록 공공의 무능은 더해진다. 안동댐 상류 환경오염 사례에서도 보는 것처럼, 한 국의 공공 파트는 더 이상 민간에서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강이 왜 오염됐느냐와 관련된 근본적인 이슈들도 공공기관들은 특정 단체 나 학교에 ‘용역’을 맡겨 질문을 풀고자 한다. 그렇다면 과연 수질오염이나 환 경오염을 연구하는 공공기관 사람들은 어떻게 일한다는 말일까?

최근 어떤 관료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로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직접 서류에 사인하거나, 자신이 어떤 정책을 주 도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정무적으로 임한 업무들의 경우 훗날 방송이나 언론 등을 통해 까발려질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처 공무 원들은 산하기관 직원들에게, 산하기관 직원들은 다시 용역사 직원에게 중요 한 과제들을 떠넘기거나, 용역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될수록 행 정기관이 초래하는 ‘전달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많은 공무원들은 갈 등이 첨예한 이슈일수록 직접 나서기를 꺼린다. 그 일의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와 별개로 말이다.

공론화 방법론, 과연 적절할까

이런 배경 하에서 문재인 행정부 들어 새로운 사회 문제 해결 방법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주민 공론화’ 내지는 ‘시민 참여형 공론화’라고 부르는 집단 토의 기반의 여론 수렴 기법이다. 한때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발전소, 유해 공장과 관련된 주민들의 의견을 받을 때 사용되었던 이 방법론은 우리나라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공사와 관련해 국민들의 의견을 물으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 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끼리 함께 토의하는 원탁 토론, 집단의 의견을 통계 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 그 외에 다양한 형태의 워크숍 등이 이루어 져 공동의 의사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방법론이 사용되었다.

이 공론화 과정에서 주된 데이터는 바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담이나 삶에서 느낀 것들을 매우 세밀하게 풀어내는 이 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서로가 시선을 교환하면서 합의를 이뤄 가 는 과정이 ‘스토리텔링’이다. 기본적으로 이 데이터는 공공기관이나 기업 연 구소가 생산해 낸 통계와 차이가 있다. 우선 사람의 감정이 실려 있고, 숫자 로 이루어진 통계보다 훨씬 사회문화적 맥락도 풍부하다. 그래서 사회과학자 들 중에 일부는 문화 인류학자들이 사용하는 ‘참여 관찰법’ 내지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데이터 수집법’을 통해 특정 현상에 대해 분석하거나 논문을 작성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스토리텔링은 철저히 비논리의 영역이다. 물론 그 비논리의 영역 을 파악하기 위해 집단의 토론과 이야기 수집을 통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통 서베이에 답을 작성하는 것과 달리 일종의 ‘쏠림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제대로 된 공론화가 아니라 의도하지 않게 ‘다수결’처 럼 결론이 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에 민감하다. 경제학자 수실 빅찬다니는 ‘ 정보의 폭포’(information cascade) 현상에 대해 쓴 논문에서 많은 사람들 이 새로운 정보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현상을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에 비유하고,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채택한 행동이나 이야기를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러한 사회적 전염 현상은 혁신 의 확산과도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혁신은 기본적으로 집단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입소문 효과를 통해서 널리 퍼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납 득될 수 있는 형태로 전파되어야만 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가리켜 사회 학자들은 ‘혁신의 제도화’라고도 언급하기도 했다.

다수가 채택한 의견이나 행동은 마음이 편하다. 왜냐면 그 자체로 신뢰성을 주고, 정당화되는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의 정치적 자원도 스토리텔링이다

그런데 환경운동을 이끌어가는 단체들도 ‘스토리텔링’을 정치적 자원으로 삼는다. 아니, 그들에게는 스토리텔링이 거의 유일한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를 뿌리고, 퍼포먼스를 하고,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활동 반경 을 입증해 보이려고 한다.

사회학자 클라우스 웨버(Klaus Weber)는 미국에서 청정육, 즉 깨끗한 자 연의 풀을 먹인 쇠고기를 생산하는 업자들이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결집하 는 과정 속에 ‘스토리텔링’의 힘이 있다고 주장했다. 공장육 시스템에서 청정 육은 단가가 매우 높고, 생산 과정이 까다로워 표준화된 마케팅을 하기 어려 운 제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청정육 생산 업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체 성을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처럼 포장하고, 자주 모이고 언론에 메시지를 보 내면서 그들의 힘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80년대부터 들불처럼 일어났 던 ‘한살림’이나 ‘우리밀’ 운동, 가톨릭 농민회의 유기농 재배 운동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결집 체계를 갖추었다. 이 과정에서 환경운동연합이나 녹색연합 등이 크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운동가들은 대중들에게 그들을 가장 잘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이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 기 자원을 만들어 내고 퍼뜨리는 것이다. 대중들의 인식을 장악하지 못하면, 그 운동은 가치를 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공 장이나 광산, 하천 개발과 관련된 이슈들이 계속해서 공격받는 국면들을 관찰 해 보면, 실제 현장의 기술적 문제와 관련이 없는 ‘문학적 괴담’들이 자주 살 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XX 제련공장 주변에는 중금속이 섞인 눈이 내린다. 이 일대 사람들은 이것을 XX 눈이라고 한다. 그 회사가 만들어낸 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눈을 맞으면 발 암물질을 우리 몸에 자연스럽게 흡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금속이 함유된 물고기를 백로가 먹고 죽는다. 그 물을 인근 취수원에서 정제해서 지역 시민들이 수돗물로 마신다. 우리는 중금속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을 마시고 신 음하게 될 것이다.”

큰 하천을 직접 취수원으로 활용해서 식수로 쓰는 사람들은 단언컨대 대한 민국에 단 한 명도 없다. 일반적으로 상수도용 취수원은 하천과 별도로 존재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생수 산업이 1조가 넘는 시대에, 과연 몇 명 이나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살아갈까. 문제는 이러한 ‘문학적 괴담’이 영 향력이 꽤 크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통계 데이터보다 다수가 받아들이는 그 럴듯한 이야기들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뇌리에 쉽게 박히기 때문이다. 과거 에 광우병 괴담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스토리텔링을 매개로 공론화 용역과 시민단체가 통한다’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특정 여론을 ‘문학적 괴담’을 통해 설파하고, 이 주장 이 주민들의 마인드에 심어지면, 그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론화 작업’을 한다 고 해 봤자 별다른 데이터가 나올 리 없다. 그냥 괴담 수준의 자료가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공론화 석상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정치적 작업을 하고, 공론화 컨설턴트들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공기관 에 보고할 자료를 만든다. 이 정보의 유통, 순환 체계 속에서 제대로 된 필터 메커니즘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공론화는 결국 공공 통계를 대체할 만한 시민 단체들의 또 다른 정치적 데이터 생산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전문가의 참여’가 중요하다. 무조건 대중의 참여에 맡기는 일방적인 ‘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 아니라, 전문가가 공론화 과정에서 참가하 여 토론을 중재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정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1988년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는 사회운동의 화두를 던진 경제학자가 있었다. 에릭 폰 히펠(Eric Von Hippel)이라는 MIT 슬론 경 영대학원의 교수다. 그는 기술 혁신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경험이나 역사적 맥락에 흡착된 지식(sticky information) 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지식들은 좀처럼 공공 조직에서 공유되거나 이 전되기 어려운데, 만약 자기가 체득한 기술이나 정보 같은 것들을 자발적으 로 ‘이야기’를 통해 나누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통해 개방적인 지식 공유 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령 예를 들어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한 프로그램을 위해 소스코드를 개발 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개발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소스코드를 건네받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앞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거나, 다양한 형태의 존 경심, 그리고 사회적 관심 등을 나타내면서 그들과 관계 형성을 할 수 있을 것 이다. 폰 히펠 교수는 이렇게 다른 사람보다 먼저 기술 개발에 앞장서면서 남 에게 가르쳐 주길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켜 ‘리드 유저’(Lead User)라고 말했 다. 이들은 온라인 지식 공유 공간에서 다른 사용자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 는 멘토이자 ‘공론화’ 과정을 주도하는 전문가들이다. 만일 잘못된 정보가 초심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더라도, 리드 유저들이 적절히 개입해 좀 더 나은 형 태의 데이터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폰 히펠 교수의 ‘리드 유저’ 이론 은 온라인 기술과 관련된 생태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뭉친 공동체들의 활성화 방안을 설명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틀 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리드 유저’를 통한 공론화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네 환경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리드 유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으 로 보인다. 시민단체와 공공기관, 오염의 당사자와 주민 등이 참여한 ‘민관 대 책 협의회’에는 숱한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지만, 이들이 내놓은 주장들은 거 의 중립적이지 않거나 전문가 본인의 경험에 입각해 특정 방향으로 의사결정 이 유도되게끔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공무원 들은,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위장된 전문가’들이 유도한 의사결정을 합법적인 것으로 재단하거나, 외려 악용하기도 한다.

공론화 과정도 마찬가지다. 집단 토의나 원탁 토론을 백 날 한다고 해서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고 참여자들이 새로운 관점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 이 없다. 때에 따라서는 공론화 과정 참여자들의 편견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 으로 논리가 전개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집단의 목소리까지 개입하게 되면, 공론화는 안 하니만 못한 전체주의적 방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문가’, 즉 ‘리드 유저’ 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 리드 유저는 가급적이면 지역사회와 직접적인 이해관 계가 없거나, 있더라도 오랫동안 토착민들과 떨어져서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 다. 우리나라 지역의 환경 갈등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온전 한 자연환경 보전이 아니라, 토착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처럼 변 질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환경오염 자체 양상이 아니라 문제의 당사 자로 지목된 기업가의 갈등, 경쟁, 협력 여부 등이 오히려 문제의 원인인 경 우가 많은 것이다. 이렇게 도덕적 해이에 쪄들어 있는 환경 시민단체들은 농 업 문명과 산업 문명이 갖고 있는 빈틈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 이해관계를 깨 주고, 집단 의사결정이 전체주의적으로 이행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 로 ‘리드 유저’들이다. 앞으로 환경 공론화 과정에는 반드시 이런 종류의 전문 가들이 2-3명 이상 포함되어 집단의 시각을 좀 더 폭넓고 깊게 확보할 수 있 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또 환경과 농업 문제를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지역의 이권을 해결하기 위한 현안으로 변질시켜 버리는 사람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라도 ‘리드 유저’는 매우 중요하다.

공론화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 물어야

공론화가 집단 토의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해서, 그 절 차와 결과에 대해서 어떤 의문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 다. 오히려 여러 사람과의 합의를 거친 결과일수록 계속해서 특정 방향에 대 해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 그 자체 로 인해 민주주의적 성격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언급했던 ‘정보 폭포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은 꼭 합리적인 방향 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다.

자신의 전문성과 역할을 이행하기보다도 공공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는 공무원들에게는 엄격한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론화 의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도 공공 종사자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의무를 지울 필요가 있다.

– 노봉호

지구와에너지
(사)한반도평화에너지센터가 발행하는 신개념의 컨설팅형 입법정책 계간지 매거진 '지구와에너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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