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처리 혁신 사례로 본 기술과 지속 가능한 발전 -미국 서남부 발전소의 무방류(ZLD) 시스템

김윤진 동아일보 기자 truth311@donga.com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및 동아 비즈니스리뷰 취재기자. 매일경제 증권부, 사회부, 과학기술부 기자 역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과학저널리즘 석사.

“물이 기름보다 귀해질 날이 올 것이다(We will be fighting over water not oil)”

쨍한 햇빛,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타들어 갈 듯한 날씨의 미국 남부 텍사스 주. 일주일에 7일, 24시간 에어컨을 가동해야 하는 텍사스 사람들에게 인류 문명의 결실인 전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재다. 그런데 이 전기를 생산하고 도 시의 불빛을 밝히려면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 바로 ‘물’이다. 석탄, 가스 등 화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증기 터빈을 돌려야 하는 데, 이때 터빈을 차갑게 식히는 데 엄청난 양의 냉각수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캘리포니아, 텍사스, 네바다 등 서남부 4000만 인구가 2000km 콜로라도 강줄기에 의존해 산업 용수, 농업용수, 식수 등을 조달하 는 상황에서 냉각수를 무한정 끌어올 정도로 수자원이 넘쳐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세계 최대 유흥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콜로 라도 강에 댐을 세워 만든 16만 에이커의 인공 호수 ‘미드(Mead)’가 없으면 유지될 수조차 없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밤을 가능케 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이 2만 1000명을 동원해 건설한 후버댐이다. 이처럼 물 저장과 활용의 기술을 빼놓고 미국 서남부 도시의 부흥을 논할 수는 없다. 이 지역의 도시 발전(發電)을 위한 이 지역의 물 재사용 역사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의 발전소들은 오래도록 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총 1516MW(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하며 중부 텍사스 지역 약 150만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텍사스주 템플시 판다 천연가스 발전소도 예외는 아니다. 액화천연가스(LNG)로 물을 끓여 증기 터빈을 돌리는 이 발전소에서도 발전기 2대를 가동한 뒤면 어김없이 폐열을 식히고 난 뒤 많은 양의 냉각수가 버려진다. LNG가 화석연료 중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가장 적게 배출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은 에너지원으로 평가받지만, 이 역시 물 수급의 문제로부터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헤이즈 발전소 수처리 시설은 도시 하수(75%)와 하천(25%)에서 공급받은 물을 각종 필터로 여과, 정화한다

이곳의 냉각탑 2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시 폐수 물줄기의 근원은 템플시 인근의 하수 처리장이다. 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템플시에서 발전소 냉각탑에 사용하기 위해 판다 발전소에 공급한 재생 폐수는 50억 갤런에 달 한다.1) 그렇지만 템플시 최고의 물 사용자 중 하나인 판단 발전소는 물 재사 용을 통해 상당한 수자원 절약을 달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발전소가 현재 채택하고 있는 물 재사용 기술은 바로 폐수를 98~100%를 재활용하는 ‘무방류(Zero Liquid Discharge, ZLD)’ 시스템이다. 물 한 방울도 허투루 쓰지 않 고 발전소에서 새나가게 두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다. 이 발전소의 ZLD 시스템은 분당 450갤런의 물을 처리하며, 이는 새로이 끌어와야 할 원 천 수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물 한 방울도 새나가지 않게’ 무방류(ZLD)의 도입

미국의 민간 발전소들이 활발히 도입하고 있는 무방류(ZLD) 시스템을 아 주 단순화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통상적으로 라면을 끓이고 난 뒤 건더기 를 건져내고 나면 남은 국물을 하수구나 변기를 통해 버린다. 이때 남은 국물 을 발전용 폐수라고 하자. 이 국물에는 스프의 오염 성분이 남아 있다. 그렇 다면 국물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해서 펄펄 끓여 졸 이고, 또 졸이면 된다. 그렇게 끓일 때 나오는 깨끗한 수증기는 모아서 다시 물로 만들고, 졸이다 남은 스프 찌꺼기는 숟가락으로 긁어내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물을 다시 라면을 끓이는 데 재활용된다. 이게 무방류의 대략 적인 개념이다.

무방류 시스템은 쓰고남은 냉각수를 증발시키고, 슬러지와 염 케이크로 농축해 결정화한 뒤 증류수를 재활용한다

이를 실제 시스템에 대입해 보면 라면 국물은 냉각수로 쓰인 뒤 배출된 폐 수와 유사하고, 졸인 국물과 고형화된 스프 찌꺼기는 각각 염 슬러리와 케이크(salt cake)에 해당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물을 끓여서 수증기로 만드는 데 필요한 증발농축기(brine concentrator), 슬러리를 버리기 좋은 고체 찌꺼 기로 만드는 결정기(crystallizer) 등은 무방류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 장비다. 이 공정은 냉각수에 포함된 소금(염), 칼슘, 마그네슘 등의 이온 성분 까지 모두 없애 재활용이 가능한 청정수로 만들어준다. 발전용 터빈을 돌릴 때는 반도체 제조와 마찬가지로 오작동을 막기 위해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 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공짜가 아니다. 엄청난 시설 장비뿐 아니라 농축기, 결정기 를 굴리는 데 전기가 또 투입된다. 템플 판다 발전소를 짓던 2013년 당시 수 처리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던 GE의 위비르 싱(Yuvbir Singh)은 “에너지와 물 은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 중 하나이며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라며 “물을 생산하려면 전기가 필요하고, 전기를 생산하려면 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메마른 땅을 가진 미 국 서남부에서 이처럼 물의 98~100%를 재이용하는 시스템의 가치는 그 무 엇과도 비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전기가 물보다 풍부한 이들 지역에서 무방 류 시스템이 도시의 성장을 견인할 혁신적인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다.

엄격한 규제가 낳은 기술의 진보

현재 텍사스주에서는 템플 판다 발전소 이외에도 오스틴시에 위치한 헤이 즈 발전소, 과달루프 발전소 등 민간 발전소의 50~75%가 무방류 혁신 시스 템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조금씩 장비 구성이나 시스템에는 차이가 있지만,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물을 재이용하려 한 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헤이즈 발전소의 경우 처음 끌어오는 물의 75%가 강물, 25%가 하수 처리장에서 걸러진 도시 폐수다. 이런 방식을 택하는 까닭 은 비교적 강에 인접해 있어 강물을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과 달루프 발전소는 100%의 물을 하천에서 조달한다. 반면 강 유역과 멀리 떨어 져 있는 템플 판다 발전소는 100% 도시 폐수를 이용한다. 이 역시 주어진 조 건에서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식을 고민한 결과다. 또 판다 발전소의 경우 건 조한 기후의 이점을 극대화해 비싼 증발농축기를 도입하지 않고 연못에서 물 을 자연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깨끗한 물을 얻고 있다.

세계적인 수 처리 업체이자 이들 발전소에 무방류 시스템을 구축한 수에즈 의 관계자 부르스 카스니츠는 “미국에서는 이런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면 인 허가 기간이 크게 단축돼 발전 사업을 시작하는 데 유리하다”라며 “이는 궁극 적으로 발전에 따른 비용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경제적이며, 각각 발전소 상황에 따라 경제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서남부 지역의 민간 발전소가 이런 무방류 시스템을 앞다퉈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허가’, 즉 규제 때문이다. 잦은 가뭄과 물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주 정부 차원에서 물을 재이용하 는 경우 발전소 설립 및 운영을 훨씬 빠르게 승인해주는 것. 반면 이런 시스템 을 갖추지 못하면 인허가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 해야 대관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텍사스 주의 수자원 개발 이사회는 5년마다 수자원 공급을 보존하고, 어떻게 미래 수 요에 대비하고 가뭄에 대비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며 물 재이용을 적극적으 로 독려한다. 이에 따라 2007년 수립된 ‘워터 포 텍사스(Water for Texas)’ 계획에 따르면 텍사스주에서 재활용되는 물은 2060년까지 연간 160만 에이커 피트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캘리포니아도 마찬가지로 규제 기관이 물 부족이란 위험에 대비해 물 재이용이라는 목표를 중점 과제로 설정하고 일관 성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대표적인 물 재이용 프로젝트이자 2000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재생 용 수 시스템이었던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시의 워터 시스템(SAWS)도 엄격한 규 제가 낳은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물 부족으로 멸종 위기에까 지 처한 종을 유지하기 위해 연방 법원이 대수층 사용을 제한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물 재이용이 확대된 것. SAWS의 재생수는 전기 발전소 외에 도 샌안토니오시의 4개 군사 기지나 여러 병원, 대학, 데이터 센터 등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SAWS는 효과적인 폐수 재사용 시스템을 구현함으로 써 시는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난 지난 20년간 물 수요를 늘리지 않고 인구를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웨스트 베이진(West Basin) 지구도 유사한 혁 신 사례로 꼽힌다. 남 캘리포니아 지역의 약 백만 인구에 물을 공급하는 웨스 트 베이진은 1900년대 초부터 재활용된 물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고,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보존 및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미국은 발전소 설립 허가 단계에서부터 무방류 도입 여부를 검토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혁신

미국 서남부의 물 재이용 시스템이 의미 있는 까닭은 기술 혁신을 통해 환 경 보호와 발전을 대립되는 가치가 아니라 양립 가능한 가치로 전환했다는 데 있다. 물이 부족하다고 해서, 혹은 사막 한복판이라고 해서 도시의 조명이 꺼 지고 발전소가 문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한 것이다. 무방류 수 처리 시 스템을 구축한 수에즈는 발전소를 지역으로부터 몰아내지 않고도 수자원 고 갈을 막고 전력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미국의 민간 발전소들은 이 대안을 바탕으로 주 정부의 규제를 따르면서도 가장 비용 효율 적이고 밀도 있는 방식의 발전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템플 판다 발전소를 비롯해 텍사스 SAWS, 캘리포니 아 웨스트 베이진 등 수 처리 기술 혁신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미국 수 환경학회(Water Environment Federation)가 꼽은 성공하는 프로젝트의 조 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

첫째, 이들 프로젝트는 대부분 이해관계자의 ‘신뢰’에 기반을 뒀다. 이들은 폐수 플랜트와 전기 시설의 설계 및 구현 전반에 걸쳐 규제 기관뿐 아니라 도시 및 지역 계획자, 일반 대중과 긴밀히 협력했다. 아울러 수질이나 수량 변 동 등 예기치 못한 운영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수 처리장과 발전 시설 도 힘을 합쳤다.

둘째, 적응형 시스템을 구축해 계속해서 변화나 불확실성에 적응했다. 성공 적인 시스템 도입을 위해서는 잠재적인 기술적 결함이 예견되더라도, 이를 발 견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상황에 맞는 최적화 시스 템의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대중 교육을 통해 인식 제고에 노력했다. 폐수 재사 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를 줄이기 위해 소통에 힘쓴 것. 폐수 재사용에 대한 명확한 의사소통이 없으면 지역 사회가 프로젝트를 차단하거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 다. 이처럼 의사결정자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프로젝트의 필요성 과 공공의 이익을 입증하고, 건강 및 안전 문제에 대한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 한 선결조건으로 꼽혔다. 템플시 판다 발전소의 관리자 트렌트 심슨은 “필요 한 경우 인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무방류 시스템에도 전력 소모나 수질 관리 등 잠재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런 문제들도 기술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항상 더 효율적인 방식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 김윤진

1) Citiy of Temple(2019), Utility Profile and Water Conservation, p.14.
2) Water Environment Federation(2012), Municipal Wastewater Reuse by Electric Utilities: Best Practices and Future Directions, 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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