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 한국에 기회의 문이 열리나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중앙일보 논설위원 역임. 문화부, 국제부, 과학기술부 등에서 근무 코소보 전쟁, 9.11테러 등의 사건 취재 및 보도 지휘. 부산대 약대, 서울대 보건대학원 졸업. 영국 런던대 IOE에서 미디어와 문화 연구.

한국은 미국과 손잡고 중동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공동 수출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통해 원전 수출을 한국의 거대 산업으로 키울 기회 를 잡을 수 있을까.

지난 9월 9~12일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24회 세계에너지총회(World Energy Congress)에서 만난 에너지 분야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에 대중동 원전 40기 공동 수출 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한국이 UAE 바라카에 원전 4기를 건설하는 주계약의 규모가 244억 달러(약 28조 원)였음을 감안하면 40기면 2440억 달러(약 289 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로버트 맥팔레인 미국 워싱턴의 근동정책 연구소 자문 위원 겸 세계안보분석연구소 회장을 포함한 5명의 국제평화전력번영 방문단 이 지난 6월 중순 방한해 국내 원전 업계 관계자들에게 이런 ‘원전 컨소시엄’을 제안했다.

이 관계자는 “맥팔레인 회장은 백악관 최고위층의 시그널에 따 라 방한했던 것으로 안다”라며 “당시 한국 정부 관계자도 워싱턴에서 컨소시 엄 구성 문제를 논의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이 관계자는 맥팔레인 장군의 방한과 원전 컨소시엄 제안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 배경에는 첫째, 불안한 중동 정세가 자리 잡고 있다. 중동 지역은 비산유 국의 경우 만성적인 저개발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빈부 격차도 심하다. 이에 따른 민심 이반이 정치 불안을 낳고, 나아가 일부 주민의 극단주의 테러 세력에 대한 동조를 낳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국가는 전력 부족을 겪기도 한다. 원유와 가스가 넘치는 산유국들도 미래 화석연료 고갈과 환경 문제를 고려해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은 이런 상황에 서 중동 지역에 40여 개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서 지역의 경제 부흥을 이 끌겠다는 ‘중동판 마셜 플랜’을 추진 중이다.

둘째, 중동판 마셜 플랜에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개입 하기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원전 건설을 통한 부흥 정책으로 개입 과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가 담겼다. 미국은 과거 석유 파동 이후 지정학적으 로 중동 지역에 중요해지자 많은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했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 들어 셰일 가스 붐으로 원유를 자급하게 되면서 중동에 대한 개입과 예 산 지출을 억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전환하고 있다.

셋째 요인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상용 원전 수주전에서 다른 나라에 밀 렸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2.8GWe(기가와트) 급 원전 2기 건설을 추진 중이 다.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가 한국·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의 5개 예비사업자를 대상으로 기술평가를 한 결과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반면 한국은 이번 기술평가 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제24회 세계에너지총회, 출처: 중앙일보

게다가 한국은 UAE 원전을 수주해 1호기를 건설하면서 원전 건설 사상 드 문 ‘정해진 기일 안에, 예산 범위 내에서(On Time, Within Budget)’ 완공해 국제 원자력 건설업계와 중동 지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자 미국이 한 국에 손을 내밀어 컨소시엄을 제안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바라카 원전은 UAE 원자력공사(ENEC)가 한국의 한전·한국수력원자력·한전기술과 2009년 12월 4기에 244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로 계약해 건설에 들어갔다. 정비 사업 등은 제외한 주계약 규모다. 이 원전에는 미국 원천기술을 바탕으 로 한국이 개발한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을 장착한다.

더구나 현재 자체 기술로 원자로를 생산하고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 여러 기의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미국· 프랑스·중국·러시아의 5개국 밖에 없다. 전 세계 다섯 나라밖에 없는 원전 건 설 클럽 회원국에 한국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원전 건설 클럽 회원국이라고 해도 모두 건설 능력이 있는 게 아니 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원전의 원천기술국이지만,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 고 이후 기존 원전 99기는 계속 가동했지만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했다. 최근 기종 원전에 추가 설립을 추진하던 2기도 건설을 중단했다. 원전 건설 부문에 서 한때 강력한 경쟁력을 자랑했던 프랑스의 국영 원자력 회사 아레바는 핀 란드에서 신규 원전을 건설하다 추진력을 잃고 중단한 상태다. 글로벌 시장의 건설 노하우 부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 세계에서 엔지니어와 건설 인력을 충당하다 보니 원전 건설 공사 매뉴얼을 수많은 언어로 번역해야 해야 하는 등 문제가 줄을 이어 행정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말도 들린다.

중국과 러시아는 옛 공산권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다른 방식으로 원전 과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다. 게다가 원자력 기술은 민간용이라도 해도 여전히 예민한 전략 기술로 분류되므로 미국이 이 분야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을 가 능성은 국제 관계상 희박하다.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과 손을 잡을 경우 미국 의 앞선 원전 기술이 이들 나라에 일방적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특 히 중국은 자국에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원전을 건설할 당시 상당수 기술을 빼 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 충돌에서 중 국의 서방 지적재산권 불인정 또는 침해, 기술 유출은 핵심 사안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은 서방권의 핵심 국가로 미국의 군사와 경제 동맹국일 뿐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원전 기술을 전수받은 원자력 동맹국이기도 하다. 한국이 자체 개발한15 원자로인 APR-1400이 미국 원자력 규제위원회의 안전 인증 까지 받았다. 한국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원자력 기술력을 확보한 유일한 외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라 한국은 원전 건설력까 지 확보하고 있다. 바라카 원전 건설은 중동 지역에서 살아있는 신화로 통한 다. 원전을 앞세워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한국과 손잡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중동에선 UAE 발 원전 르네상스가 한창이다. UAE는 미국 에너지 관 리청(EIA) 통계로 2018년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 310만 6077배럴로 세계 8 위, 수출량 하루 229만 6473배럴로 세계 6위인 화석연료 부국이다. 사우디 는 2018년 하루 평균 1504만 ~ 30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 세계 2위의 산 유국이자 830만 배럴을 수출한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이다. 그런데도 UAE 는 이미 원전을 하나 보유하고 있으며, 사우디는 2기 건설에 나섰다. 그동안 나라의 경제발전을 지탱해왔던 석유와 가스는 수출품으로 쓰고, 자국의 에너 지 소비는 화석연료와 원자력, 재생에너지가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를 추구 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기술을 미리 확보해 에너 지를 구각 주요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실제로 지난 9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24회 세계에너지총회는 이런 ‘에너 지 믹스’를 주제로 하는 미래 에너지 전략 설계로 뜨거웠다. 세계에너지총회 는 에너지 전문 국제민간기구인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 가 3년마다 여는 에너지 관련 세계 최대 플랫폼이다. 세계에너지협의회는 1924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돼 현재 94개국이 참여한다.

제24회 세계에너지총회, 출처: 중앙일보

김영훈 회장은 개막 연설에서 “서로 장점과 한계가 뚜렷한 화석연료·원자 력·신재생에너지의 ‘에너지 믹스’로 에너지 확보와 환경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비교적 싸고 손쉽게 구할 순 있지만 환경오염 원을 다량 배출하는 화석연료, 탄소 배출은 ‘제로’지만 폐기물 처리 문제를 고 민해야 하는 원전, 그리고 청정에너지이지만 가격이 비싼 신재생에너지가 조 화롭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 회장은 세계에너지협의회의 첫 한 국인 회장으로 이번 행사로 3년 임기를 마감했다.

개최국인 UAE의 수하일 알 마즈루에이 에너지·산업 장관은 개막 연설에 서 “UAE는 2050년까지 청정에너지를 발전용량 기준으로 50%까지 올리는 ‘2050 에너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를 위해 바라 카에는 한국 원전을, 아부다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에너지 공원을 보 유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에너지 균형을 추구하는 핵심 도구로 원전과 태양에너지를 채택했다. 바라카 원전은 UAE 최초일 뿐 아니라 아랍 지역의 첫 상업 원전으로 UAE의 자랑일 뿐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의 자부심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알 마즈루에이 장관 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UAE는 미래 에너지 전략을 주도하는 국 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UAE 국영기업인 에미리트 수도전기는 지난 7월 아부다비에 거대 한 태양에너지 발전소인 ‘누르 아부다비’를 준공했다. 320만 개의 태양열 패 널을 설치해 원자로 하나와 맞먹는 최대 1177MW(1.177GWe)의 발전용량 을 가진 세계 최대의 솔라 파크다. UAE는 최대 발전용량 2000MW(2GW) 규 모의 별도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2개의 태양에너지 발전소가 동시에 가동하 면 UAE는 중동 유일의 원자력 발전 국가에 이어 최대의 재생에너지 활용 국 가로 에너지 믹스의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누르 아부다비 사업은 아부다비 정부와 중국의 진코 솔라, 그리고 일본의 마루베니 상사가 세운 합 작사가 맡았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이슬람 성지 메카에 2600MW(2.6GW) 규모의 태양에너지 발전소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메카는 매년 수많은 순례자가 모여 전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전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계획 중인 2기는 물론 2030년까지 1000억 달러(약 110 조 원) 이상을 들여 10~17기의 원전을 건설해 원자력 비중을 전체 전력 생산의 15%까지 끌어올릴 작정이다. 석유로 일어선 UAE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로 석유 의존을 줄이는 계획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원자력 르네상스의 한복판인 아부다비에서 열린 올해 세계에너지 총회 전시장에선 중국과 러시아의 원전 수주 대결이 한창이었다. 중국은 국영 기업인 중국핵공업집단유한공사(China National Nuclear Corporation · CNNC) 등이 대형 부스를 설치하고 대대적인 홍보전을 벌였다. CNNC은 직 원 약 10만 명에 120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중국 원자력 산업의 중앙기업으 로 원전 수출을 주도한다. 중국은 실제 발전과 건설 실적을 내세워 세계적인 원자력 발전 국가임을 자랑했다. 중국은 전체 원자력 발전 용량과 실제 발전 량에서 세계 3위로 전 세계 원자력 발전량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2018년 기준으로 중국 원전의 발전량은 294.4 테라와트시(TWh)로 자국 전체 발전 량의 4.2%를 맡았다.

자체 원자로와 원전 기술이 없던 중국은 전 세계 원자로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외국 원자로를 고루 들여와 기술을 축적했다. 현재 캐나다의 CANDU형 2기, 러시아의 VVER형 2기, 프랑스의 M310형 2기와 EPR형 2기, 미국 웨 스팅하우스의 AP-1000 4기가 가동 중이다. 2007년 ‘원자력 발전 중장기 발 전 계획’을 수립하고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와 프랑스 국영 아레바의 EPR 등 2가지 원자로를 바탕으로 1000㎿e급의 3세대 가압경수로(PWR) 원자로의 국산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CAP 계열의 CAP1000 · CAP1400 CAP1700 등과 ACPR-1000 등 원자로를 개발했으며 여기서 얻은 기술을 집약해 HPR-1000을 내놓았다. 자체 원자로를 개발한 중국은 더 이상 외국 원자로를 들여오지 않을 전망이다. 자국에서 개발한 HPR-1000과 미국산 AP-1000을 바탕으로 설계한 CAP 계열을 미래 원전의 원자로로 사용할 것 으로 보인다.

건설 중인 바라카 원전

러시아는 원전 수출을 국가 주요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국영 원자력 업체 로사톰은 현재 전 세계에서 31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거나 협상 중이다. 자 국에 4기를 짓고 있으며 해외 11개국에서 27기의 원전을 건설을 진행하거 나 협상 중이다. 글로벌 원전 건설 시장의 30%를 차지한다. 원전 수출 프로 젝트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9년에만 838억 달러에 이른다. 로사톰의 원전 수출은 2011년 195억 달러였지만 2015년 700억 달러, 올해 800억 달러 를 넘어섰다.

원전 수출을 추진한 국가는 옛 소련권인 벨라루스·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옛 동유럽권인 헝가리와 북유럽의 핀란드, 중근동의 터키·이집트·이란, 아시아 의 인도·방글라데시·중국 등에 걸쳐 있다. 로사톰은 자체 개발한 3세대 원자 로인 VVER-1200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4년이면 원전을 건설해 40년 이 상 운용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아부다비의 세계에너지총회 전시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중동 산 유국들의 원자력 열망과 중국과 러시아의 수주전이 만나는 자리였다. 미국이 한국에 함께 손잡고 글로벌 원전 시장에 진출하자고 제안한 이유가 이보다 더 뚜렷하게 보일 수 없었다.

– 박기영

지구와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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