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도련님 버리는 스가 “24시간 정치만 고민한다”

천영준 데이터 평론가.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주군의 집안 뒤엎고 영지 찬탈하는 전국시대 전통

일본의 정치는 리더십보다 팔로어십을 중시한다. 아랫사람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리더는 금방 외면당한다. 옛날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부하가 주군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사관(仕官)하는 일이 빈번했다. 덕이 없는 몇몇 주군들은 가로(家老 : 영주의 수석 가신)나 실세 가신에게 차츰차츰 세(勢)를 빼앗 기고, 나중에는 주가배반(主家背反 : 주군의 집안을 뒤엎고 가신이 영지를 찬탈하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일본 역사상 난세의 영웅으로 손꼽히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안 모두 하극상과 배신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집단이었다.

현대 일본 정치에서도 아랫사람, 또는 지난날의 부하가 ‘오야붕’(親分 : 집단에서 부모 역할에 해당하는 실력자)을 배신하고 새로운 파벌이나 정당을 창설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가령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는 자신을 키워 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등지고 1985년 ‘소세이카이’(創政會)라는 40명 규모의 파벌을 만들었다. 다케시타와 함께 쿠데타를 했던 오자와 이치로 의원은 1993년 동료 정치인들과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생당을 만들었다. 자민당이 단독으로 여당을 계속 하는 55년 체제에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2020년 12월 현재, 또 다른 “배신의 정치”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일본 정계 내의 관측이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偉秀) 총리가 자신을 신임하고 후계자로 만들어준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를 등진다는 것이다. 그 명목은 아베 본인이 지난 5년 간 정부 행사인 ‘벚꽃 보는 모임’에 지역구민들을 초청하고 정치자금을 부당하게 지출한 사건이다. 아베가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징역살이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스가는 8년 동안 아베 정권을 떠받친 관방장관(官房長官 : 일본 내각의 비서실장 겸 대변인)이었다. 그런 그가 아베를 겨냥한 수사와 처벌을 ‘지켜본다’는 것은 모순이다. 정권의 보좌관으로서 동반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벚꽃보는 모임’ 사건이 스가의 기획이라고 수군대고 있다.

아베 전 총리가 구속된 후 ‘스가 1강’(强) 체제가 만들어지면, 일본의 국제 관계는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관찰이 있다. 특히 아베를 비롯해 자민당의 ‘도련님 정치인’(2세, 3세 정치인들이 일본에는 많다)들은 민생 현안에는 둔감한 탓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불필요한 극우 노선을 지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스가의 경우에는 지방 의원으로 시작해 잔다리를 밟아 오르며 항상 타인과 화해와 조정을 지향한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또 스가 정권의 사실상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 장은 한국, 중국 등과도 가까운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베와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 스가는 과연 어떤 방향을 택하게 될까.

[그림 1] 일본 자민당 주류파벌이었던 다나카파(헤이세이정책연구회) 소속 리더들

참모이면서도 리베로 스타일 스가

스가 총리는 8년 간의 아베 정권을 떠받친 실무자이자 기획자로 통한다. 그는 ‘아베 극장’(아베가 주연배우로 활약하는 정치무대) 내내 자신의 목소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각계에 강한 개성을 풍겨온 참모였다. 우선 스가는 검찰과 관료 조직을 쥐고 흔들었다. 자신의 구상을 잘 이행하는 공무원은 과감하게 고속승진 시키고, 반대와 몽니로 일관하는 공무원은 ‘기득권 해체’라는 명분으로 좌천하거나 퇴직시켰다. 그 덕분에 외교와 내정이 모두 내각의 손에 장악되었다. 한때 관료 특권을 해체하기 위해 “성역 없는 개혁”을 외치던 고이즈미는 “정치 주도 국정”이 꿈이라고 수차례 유권자들에게 밝혔다. 하지만 2020년의 스가는 내각에서 기침소리만 내도 알아서 기는 관료 사회를 만들어 냈다.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이토록 강한 ‘그립’ 덕분에 아베 정권은 8년 동안 총리 부인과 친구가 연루 된 대형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었다. 검찰 수사는 알아서 무마되었고, 특혜 시비의 중심이었던 공무원들은 전원 무혐의처분 되었다. 미디어에서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스가는 내각의 대변인으로서 기자들에게 “내가 당신의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다.”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 대로”라며 정권을 지켜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림 2] 아베 정권의 몰락을 초래한 벚꽃 보는 모임

이처럼 충성심 강한 참모 같았던 스가가 왜 총리가 되고 나서는 아베와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일까. 자고로 권력은 남과 나눌 수 없는 것이던가. 필자는 두 사람 간의 이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 가지 요인으로 짚어보려고 한다.

① 우선 스가는 자신의 신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과감하게 집단을 떠나는 리베로 유형의 인물이다. 지난날 일본의 메이지 유신도 각 번(藩)을 떠나 교토에 모여 막부(幕府)를 타도하는 데 가담한 무사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혁명 이었다. 스가는 1993년 다케시타 파를 떠난 경험이 있고, 2007년 다른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것에 반발해 ‘코치카이’(宏池會)를 그만두고 무파벌 의원을 선언한 이력이 있다. 소속 집단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중시하는 정치 스타일은 가치관이 맞지 않는 파트너와 언제든지 결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② 둘째로 아베의 처신 문제다. 그는 지난 9월 건강상의 이유(궤양성 대장염)로 총리직을 물러난 이후 별안간 “신약이 잘 들었다”며 말끔하게 회복된 상태임을 선언했다. 지난 10월에는 창생일본(創生日本)이라는 단체 활동을 재개 했다. 이 회의의 참석자들은 “아베 씨는 보수계의 정신적 지주”라며 현직 총리를 의식하지 않는 발언을 내뱉었다. 11월에는 포스트 코로나 경제정책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이 출범해 아베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스가 정권을 확실히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주변에서는 “벌써 2021년 10월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와 차기 총재 도전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아베는 스가의 전임자이자 정치 선배이지만 나이가 여섯 살이 젊다. “연장자에게 임시관리인을 맡겨두고, 대세를 정비한 뒤 다시 권력을 장악한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기 좋은 구도다. 현직 총리이자 당 총재인 스가의 입장 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다.

신권력은 적폐청산 필요해…아베, 형사처벌 배제 못해

각 나라마다 권력 구조가 다르지만 국민의 열망은 비슷하다. 민중은 언제나 새로운 권력을 원한다. 아무리 성공적인 정치를 했다 하더라도 장기집권에 한계가 뒤따르는 이유다. 아베 정권 8년은 자민당이 일본 국민들에게 정치적 성과를 각인시키는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집권이 계속되는 만큼 대중의 피로감도 누적됐다. 특히 아베는 자신의 임기 내에 터진 스캔들을 모두 무마하고, 수사에 개입해 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①총리 부인이 명예 교장으로 있는 사립학교가 2650평의 땅을 무상으로 편법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모리모토 학원(2017) 사건은 국민의 공분을 살 일이었다. ②아베 자신이 미국 유학 시절 친하게 지낸 지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이 52년 만에 지정되는 수의과대학을 운영하게된 카케 학원 사건(2017)도 우연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일이었다. ③2019년 참의원 선거 때에는 측근인 법무대신 부부가 지방을 돌며 “아베 씨가 주는 돈”이라며 금품을 살포한 일이 적발되었다. ④ 2020년 초에는 아베가 자신과 가까운 인물(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장)을 검사총장에 임명하기 위해 검사의 정년 연장을 시도하다 반발에 부딪혔고, 급기야는 ‘내기 마작’ 스캔들이 터져 망신을 당했다.

이 네 가지 스캔들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정권이 건재했다는 사실 은 일본 민주주의의 건강이 매우 심각한 지경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부패하거나 무능한 정권을 심판한 경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위기 관리자 스가의 입장에서는 “구시대의 모순”에 해당하는 아베가 영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 권력을 원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전임자를 봐주지 않는다는 이미지 연출이 절실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집단의 이익이 부합하지 않을 때에는, 과감하게 이탈을 택했던 스가 총리는 어쩌면 전임자를 가장 강력하게 처벌하는 주체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벚꽃 보는 모임’ 스캔들은 관방장관이었던 본인과 크게 관련이 없이 아베가 의원 사무소 차원에서 추진했던 일로 알려져 있다. 자민당 정권이 지난날의 적폐를 일거에 청소하고, 새 출발을 기약한다는 사실을 전파하기에는, 이만한 호기도 없는 셈 이다. 아사히 신문의 주간지 아에라(AERA)는 지난 12월 7일호에서 “전직 총리의 정치 퇴진에 관한 정보를 흘릴 수 있는 쪽은 검찰 상층부 또는 총리관 저밖에 없다”며 사실상 스가 본인이 아베 퇴출의 의지를 굳혔음을 시사했다.

2인자 니카이의 친중,능수능란한 행보

한때 주군-참모 관계였던 아베와 스가의 관계가 역전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 俊博) 간사장의 행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베 정권 내내 스가 총리와 함께 “두 사람의 괴물”로 불리며 내각을 떠받치는 파트너로 활약했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에는 무파벌 정치인인 스가가 안정적으로 당선권을 확보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니카이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에게서 정치를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진심을 다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강조한 다나카의 가르침은 니카이의 좌우명과도 같다. 그는 스승의 40년 전 말버릇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는 정치인이다. “어이, 밥 먹었는가?”(일본에서는 상대방에게 “밥 먹었냐”는 안부인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인연의 힘을 중시하는 니카이의 처세술은 묘하게 지능형 실무자 타입 인 스가의 처세술과 맞물려 자민당을 장악하는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다. 또 두 사람은 아버지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정치인이 아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최근 니카이는 아베 내각부터 계속 부총리 겸 재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와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발단은 후쿠오카 현 지사 공천과 의원 공천이었다. 두 선거 모두 니카이가 추천한 후보가 본선에 출 마해 당선되는 결과로 끝났다. 행정 체제의 2인자가 의회정치의 2인자에게 맥을 못 춘다는 말이 나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스가 총리는 한때 “아소 총재 탄생”(2007)을 주장하며 자신의 파벌을 떠난 경험이 있지만 지금은 아소와 묘한 견제 관계에 놓였다. 아소파(54명)가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지난날 한솥밥을 먹었던 기시다 후미오 전 외상의 파벌(47명)과 합치게 되면(‘다이코치카이(大宏池會)’ 구상) 자민당에서 가장 큰 계파가 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주도하는 호소다파(98명)까지 합세하면 사실상 장기집권의 포석이 완성된다. 아소는 세 번째 집권을 노리는 아베든, 한 번이라도 총리를 해보고 싶어 하는 기시다이든지 간에 자신의 권력을 위해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계산을 끝낸 듯하다. 스가-니카이 연대로서는 절대 좌시할 수 없는 흐름이다.

정치는 세의 싸움이다. 사람 수로는 스가-니카이가 아베-아소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법적인 리스크로 따지만 아베 쪽이 훨씬 위험하다. 게다가 그는 일본 자민당의 2021년 재집권 플랜에 상당히 부담이 되는 비위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필자가 아베의 정치적 미래가 밝지 않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 3] 일본 자민당 내 전, 현직 권력 간의 갈등과 협력 양상

도련님 정치의 후퇴, 자수성가형 정치의 전개

아베와 아소는 대표적인 일본의 세습정치인, 또는 도련님 정치인이다. 만약 그들이 위대한 선조(先祖)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치 데뷔조차 불가능했을 정도로 강력한 역사적 자산을 갖고 있다. 정치를 가업(家業)으로 하는 이들의 절묘한 특징이 있다. 겉으로는 매우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집안 어른의 입김과 지역 후원자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만일 도련님 정치인들이 본격적인 자기 정치를 시작한다면, 주변에서 이런 반응을 얻기 십상이다. “제발 선대(先代)의 덕망을 생각해서라도, 멋대로 굴지 말아주세요.”

그들은 대중을 향한 망언을 하거나 국회에서 버릇없는 행동을 했을 때보다도 공동체의 이해관계와 위배되는 일을 했을 때 훨씬 강한 비난을 받는다. 예를 들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前) 일본 총리는 넥타이 색깔에 모친과 누나들 이 일일이 개입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집안사람들에게 꼼짝 못하던 세습 정치인이었다(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다). ‘도련님’의 허약한 성정은 역설적으로 미디어에 매우 강경한 이미지를 표출하는 것으로 보완된다. 가령 아베는 일본회의(日本會議)라는 우경화된 이익단체에 진한 애착을 표출하며,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대중적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보수 본류’(保守本流)라며 떠받치는 지지자들이 원하는 바를 거스를 방법이 없을 것이다. 총리 재임 당시 항공자위대를 방문해 731 전투기에 올라 사진을 찍은 그의 모습은 이해관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성실함’ 그 자체다. 아베가 한때 한국의 불고기를 사랑하고, 초년 시절에는 ‘친한파’로 분류되기도 했음을 알고 있는 일본 국민이 몇이나 될까

아베와 정권 파트너 역할을 했던 아소는 ‘망언 제조기’, ‘비호감 정치인’의 전형으로 유명하다. 규슈 후쿠오카 현 일대에서 탄광과 시멘트 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의 세습정치인이다. 그는 증조부 시절부터 지역에서 쌓은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나가타초(永田町 : 일본의 국회가 있는 지역) 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최근 후쿠오카 지역 정치권에는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2019 년 현지사 선거에서 아소 측 다케우치 가즈히사 후보가 니카이 측 오가와 현 지사와 경선을 했다가 된통 깨진 것이다. 2021년 중의원 선거 공천 과정에서도 아소는 니카이 간사장과 불편한 경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은 이제 80이 넘은 아소의 “화려한 퇴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늙은 도련 님이 지역 밑바닥 민심까지 일일이 관리하기는 힘들 터이니, 이쯤에서 아들에게 선거구를 물려주라는 것이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도련님들이 정치 일선에서 퇴장하고, 스가와 니카이 같은 자수성가형 인물들이 다시 일본 정치의 핵심 권력을 거머쥐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특히 스가는 속내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24시간 정치만 고민한다”는 그의 직업관에서 집요함과 단단함이 느껴지기 도 한다. 두 사람은 일본 정계와 관계를 일(事)로 장악한 인물들이다. 친분이나 후광으로 만든 정치인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남의 심리와 욕망을 꿰뚫어 보고 전술적으로 행동해 왔기에 국내 정치 뿐 아니라 국제 관계에서도 나름의 융통성이 발휘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괜하 지는 않은 듯하다.

세상의 복잡성을 아는 정치인들은 그만큼 변화에 대한 적응이 빠르고 처세가 부드럽다. 당장 니카이만 하더라도 한국, 중국 등에 가까운 정치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끄는 파벌인 시스이카이(志帥會)는 자민당 내에서도 강성 우파에 속하는 집단이지만, 니카이 본인은 의원 외교 활동을 통해 얻은 아시아 인맥을 매우 중시한다. 보수 언론인 요미우리와 산케이는 아예 그를 ‘친중파’(親中派)라고 규정한다. 국가주의 성향이 한참 고조되어 왔던 최근 8년 일본 조야(朝野)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면모다. 니카이는 한번 신뢰로 맺은 인연을 좀처럼 훼손하지 않는 성품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막후 정치와 이면합의에 강한 것이다. 최근 한국-일본 간의 징용 노동자 배상 관련 문 제나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해서도 니카이의 역할을 기대하는 여론이 꽤 있다. 스가 총리는 니카이만큼 발이 넓지는 않지만 실용적 사고와 주도면밀한 일처 리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선거때 호재를 잡자고 폐쇄적 극우 노선을 택하지 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달도 차면 기울 듯 영원한 권력은 없다

“아베의 위기”는 권력과 검찰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도 우리 정국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논란,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논란, 원전 관련 산업부의 문건 폐기 논란, 여권 인사의 옵티머스-라임 개입 의혹 등 다양한 권력형 사건이 검찰에 계류되어 있다. 검찰과 법무부 간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가고 있는 지금, 일련의 파장이 향후 정치 국면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아베와 일본 검찰의 상황만 놓고 보면 “아무리 센 권력 도달이 차면 기울 듯 훗날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역사의 진리를 되새겨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내년 상반기에 한국 정치권과 니카이 도시 히로 자민당 간사장의 우호 관계, 도쿄 올림픽 국면, 바이든 행정부의 첫 해 라는 특수성 등이 맞물려 남-북-미 평화 선언을 도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구상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가의 피 튀기는 파벌 경쟁은 점점 예측 불가능한 지경으로 가고 있다. 늘 그렇듯 외교와 정치는 법이 아닌 힘의 영역이다. 그래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실리를 따지는 혜안과 전략이 필요하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단지 영원한 힘을 향유하려다 부패와 일탈 끝에 심판받는 권력만이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 가장 믿을 만 했던 아베의 심복이었던 스가가 ‘새 정치’를 모색하는 과정이 그래서 볼만 하다.

– 천영준

지구와에너지
(사)한반도평화에너지센터가 발행하는 신개념의 컨설팅형 입법정책 계간지 매거진 '지구와에너지' 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