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냉전의 전개(1) 시진핑, 세계를 중국화하겠다는 메시아적 사명감은 없어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덩샤오핑에서 시진핑까지 중국의 대내외적 변화를 다룬 책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의 저자. 서울신문 등에 다양한 주제로 정기 칼럼을 쓰고 있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21세기를 형성해나갈 가장 중요한 열쇠 두 가지로 미국의 기술 혁신과 중국의 도시화를 꼽았다. 스티글리츠의 말은 분명 옳았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과 21세기의 첫 20년 동안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세계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을 꼽자면 결국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세계화였기 때문이다. 흔히 ‘2차 세계화’라고도 불리는 이 거대한 물결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데, 세 계화의 퇴조 혹은 변화라는 작금의 갑작스러운 변화상을 이해하는 밑그림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보 기술은 인류의 생활 양식 전체를 뒤흔듦과 동시에 산업의 조직 양식과 공간적 배치를 모두 바꾸었다. 수많은 아날로그 정보가 디지털로 전환되자, 한계비용 없이 무한히 복제될 수 있었고 순식간에 거리의 제약을 극복하게 되었다. 정보 흐름의 제약이 사라졌다는 것은 생산 노동과 지식이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복잡한 설계도면과 디자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대양을 건널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선진 세계에 묶여 있던 제조업은 이제 저임금을 찾아 날개가 달린 듯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동유럽, 멕시코, 동남아시아 등이 그 종착지로 부상했으나, 진정한 중력의 중심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바로 중국이었다. 제3세계에 농촌 혁명을 수출하려던 중국은 놀랍도록 신속하게 세계 자본주의를 위한 공장으로 변신했다. 풍부한 저임금, 유능한 관료집단, 해외 화교 네트워크 등의 이점을 결합한 중국은 다른 경쟁국을 제치며 신발에서 컴퓨터까지 모든 제품을 생산했다. 그 제품을 생산하는 공간은 곧이어 거대한 도시로 변모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국의 기술 혁신과 중국의 도시화는 분리할 수 없는 복합체이기도 했다.

1980년 즈음에 시작된 이 물결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무섭게 증폭되었고, 어느샌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되었다. 세계화가 선진 세계와 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막대한 부를 창출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정보 기술은 선진국의 유명 도시에 거주하는 전문 지식 노동자들과 얼마 전까지 농민이었던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을 가치 창출의 새로운 주역으로 만들었다. 마치 ‘밀물은 모든 배를 들어 올린다’는 말처럼 세계화 게임의 참여국은, 적어도 유능하게 참여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승자가 될 수 있어 보였다. 가장 열렬한 참여자인 미국과 중국이 이 기간 GDP를 가장 빠르게 성장시킨 국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소련 붕괴,걸프전 승리로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합의 성립

세계화라는 기차가 기술적, 경제적 엔진으로만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화는 그것을 지지하는 안정된 정치적 합의가 있어야만 유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세계화가 ‘시대정신’으로 인식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조차 큰 문제는 아니었다. 자본주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했던 소련이 무너지고, 걸프 전쟁에서 미국이 압도적 무력을 과시하면서, 이제 미국의 지구적 기획을 방해할 수 있는 정치체는 더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는 내부 혼란에 허우적대고 있었고, 이란과 북한 같은 국가는 지역적 차원의 소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오직 중국만이 독자적으로 남은 얼마 안 남은 강대국이었으나, 이들이 세계화 게임에 참여하면서 점차 ‘또 다른 미국처럼’ 바뀌어나갈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무엇보다 세계화는 중국에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중산층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화의 정치적 기반은 선진국 국내에서도 건재했다. 사회주의가 퇴조하고 정보 기술이 주도하는 신경제가 떠오르는 가운데 좌우 양편이 모두 세계화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되었고, 무엇보다 유권자 모두가 세계화를 의심하지 않고 그 혜택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미국을 지지하는 다른 모든 서방 국가들에서도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따라서, 대외적이든 대내적이든 견고한 세계화의 정치적 지반을 의심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공기와도 같이 생각했던 세계화의 정치적 지지는 지난 1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갑작스럽게 흔들렸다. 아마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08년 미국의 자산시장이 급락하면서 벌어진 경제적 대혼란이었을 것이다. 이 혼란은 세계화가 주도하는 신경제가 과연 선진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득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켰다. 서구 기업이 거느리고 있던 거대한 생산 설비가 머나먼 대륙과 대양 건너편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은 사실 그 설비에 의존하던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은 세계화가 약속한 발전이 자신들의 성장이 아니라 그저 자국 바깥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독점한 한 줌 엘리트의 발전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2008년의 위기는 세계화를 주도하던 서구 선진국에서만 균열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위기는 선진국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질문은 이러했다.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서구식’ 발전 모델을 신뢰할 수 있을까?” 내용은 사뭇 달랐지만, 이 질문 또한 세계화의 정치적 지반에 균열을 냈다. 정치인들은 세계화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의 과실을 모두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 것이라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폰 시리즈가 출시되는 동안에도 많은 노동계층의 삶의 질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 정치적 불만은 세계화에 대한 거부의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중국, 세계화의 다음 단계인 자유민주주의는 거부

세계화 게임의 또 다른 주요 참여자로서, 세계질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국에서 이 의문이 가장 거세게 몰아쳤다. 금융위기는 중국에서 출항하는 제품에 대한 미국의 수요를 급격히 위축시켰고, 이는 중국과 같은 거대한 경제가 언제까지고 선진국의 수요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했다. 여기에 더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중국이 가지고 있던 가장 강력한 강점 중 하나였던 저임금의 이점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도 명백했다. 내부적 문제도 속출했다. 세계화의 이득은 중국 안에서도 차별적으로 돌아갔고, 수출에 유리한 연해지역과 낙후된 내륙지역의 격차가 끝도 없이 늘어났다. 국가가 여전히 성장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중국 경제는 부패를 위한 커다란 공간도 만들었고, 이는 정부의 기능성을 저하하고 정부에 대한 인민의 신뢰를 계속 갉아먹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빈번한 안전사고 기사와 도저히가 릴 수 없는 환경 재난 사진들은 자산을 축적하고 안정된 삶을 즐기고 싶어 한 신흥 중산층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세계화가 장애물에 부딪히고 중국 내부에서도 게임의 규칙이 점점 변하면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그들이 ‘신상태’라고 부르는 뉴노멀에 적응하기 위한 분투에 나서야만 했다.

저명한 석학들이 추천하고 내부에서도 일정 지지를 확보한 대안은 중국의 서구화를 가속하는 것이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유능한 국가가 극빈국에서 중진국으로 빠른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빠른 성장을 넘어 혁신을 만들어내고 성과를 모두에게 분배하는 질 높은 성장은 자유민주주의 정부에서만 가능했다. 따라서 어느 시점을 넘어서 정부는 권력을 내려놓고, 권한을 이양해야 했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민간으로부터 대표성을 확보해 끊임없는 상호견제를 추구해야만 했다. 이는 한국, 대만 같은 동아시아의 선배 자본주의 국가가 그들의 역사로 입증한 길이기도 했다. 각지의 식자들은 중국이 이 같은 길을 걷느냐, 걷지 못하냐가 향후 중국의 발전 자체를 규정할 바로미터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보았을 때 서구화와 자유화는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의 역사와 현실로 미루어 보아 당의 통제가 사라진 서구화와 자유화가 막대한 혼란을 창출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은 너무 거대했고, 중앙의 규율이 아니고서야 그 수많은 행위자 사이의 이해충돌을 조정할 방안은 없어 보였다. 2008년 이후 세계 각지에서 서구화 모델의 설득력이 떨어진 것은 공산당의 이런 판단(혹은 편견)을 강화해줬다. 선진국은 각종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아직 저발전 상태에 있는 국가가 섣불리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을 때 그 혼란은 더욱 극대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식 체제의 장점을 주장하는 베이징의 대변인들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도의 낮은 성장률과 비효율적인 공공행정, 아랍 봉기 이후 펼쳐진 중동 지역의 무질서를 이야기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을 위한 유일한 방법론이 아님을 강조했다. 적어도 서방의 시각에서 세계화 게임의 주요 전제가 세계화에 참여한 국가들의 자유화와 민주화였음을 고려할 때, 중국이 점차 독자적인 모델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분명 세계화에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 지속가능한 체제에 서로 장애물

위기의 씨앗은 2010년대를 거치면서 발아했고, 마침내는 만개했다. 탈냉전 체제의 두 주연인 미국과 중국은 급속도로 체제의 주요한 반대자로 부상했다. 먼저 2013년 중국에서는 공산당으로 권력을 집중하고 중국 외부에 독자적 세력권을 건설하고자 한 시진핑 정권이 등장했다. 중국은 여전히 과거처럼 자유무역을 옹호했으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신들이 이득을 보는 한해서만 옹호한 것이었지 미국 주도의 탈냉전 질서 자체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응해 중국에 대한 불신이 커졌으며, 2016년에는 마침내 세계화 대신 경제적 민족주의와 문화적 토착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30여 년을 번성한 세계화 체제에 대한 의문이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표면화되었다.

트럼프는 국제 무역과 지적재산권 면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국을 압박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서 이득을 얻는 다른 우방국에게도 비슷한 요구를 전했다. 중국은 처음에는 트럼프의 요구사항에 맞추려는 시늉을 보이면서 직면한 위기를 넘겨보려 하였으나, 타협은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세계화 체제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무역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따라서 2020년, 중국에서 발원하여 미국을 초토화시킨 지구적 판데믹이라는 악재는 이미 존재하던 문제를 가속한 것이지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디커플링은 결국 세계인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던 탈냉전 세계화 체제가 태생부터 품고 있던 리스크가 악화를 거듭해 통제 불능 상태에 도달한 결과인 셈이다.

미·소 구냉전은 자유주의·사회주의 이상의 격돌

격해지는 미중 갈등과 디커플링이 ‘시작의 끝’에 불과하다면 본편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중국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탈냉전 질서에서 최종적으로 이탈하면서 다시 한번 미소 냉전이 21세기의 모습으로 재현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냉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냉전을 서로 다른 이념적 비전을 가진 두 강대국이 지구적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는 경쟁이라 할 경우, 앞으로 펼쳐질 미중 갈등은 냉전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이유는 간단한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명백한 이념적 지향점이 있던 과거 냉전과 달리, 지금 두 강대국은 이념적 비전이 없거나, 최소한 상당히 희박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의 경우, 두 국가는 세계의 명백한 운명이라 할 수 있는 자유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열어젖혔다는 점에서 메시아적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다. 따라서 다른 국가와 민족은 미국과 소련이 보여준 예시를 따라옴으로써 근대화, 발전, 자유, 평등 등의 영역에서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냉전은 이 두 메시아적 국가가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각자가 걸어온 길에 따라 계몽시키려 했던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19세기의 지정학적 경쟁과는 확실히 구별되었다.

반면 중국의 세계 인식은 세계를 ‘중국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아적 사명감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중국인과 그 지도부 또한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은 미국이나 소련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점은 거기서 그친다. 미국과 소련은 스스로가 특별하기에 세계의 진리, 공동체의 핵심적 가치나 권력을 조직하는 방식이나 물적 발전을 선도하는 방법론을 먼저 깨우쳤다고 여긴다. 따라서 나머지 국가는 특별한 자신들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들이 4천년에 달하는 중화 문명의 유산과 결코 무너지지 않는 집권 공산당의 단일성 덕분에 스스로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지금의 상황은 그저 원래의 위치를 찾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인식에는 문명의 전통과 당조직의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 즉 세계 대다수의 국가는 중국처럼 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과연 타국이 중국처럼 되기를 바랄지는 별론으로 하고 말이다).

중공, 모택동식 세계 혁명 오래 전에 접어

물론 모택동 시기 중국은 세계를 미국과 소련의 방법론이 아닌 중국의 방법론으로 물들여야 한다고 각지의 혁명 활동을 지원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지도부는 그런 생각을 접은 지 한참 오래다. 그들은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가며 중국 공산당 독재 체제의 정당함을 피력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얘기하는 보편주의에 대한 반박일 뿐이지 중국 판본의 보편주의에 대한 논거로 활용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요컨대 베트남이나 라오스가 공산당을 갖고 개혁개방을 한다 해서 그것을 ‘중국 모델’의 확산과 성공으로 요란스럽게 선전할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중국이 아닌 나라는 중국처럼 될 수 없다. 애초에 중국인들은 타국이 중국화하는 것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기에 중국화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따지는 것도 중요한 의미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 체제가 균열을 일으키고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격화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20세기의 냉전을 반복할 것이라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냉전 특유의 보편주의적 사명감은 본고장인 미국에서 퇴조하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딱히 더 도덕적이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강조한 트럼프의 대중적 인기는 미국 내의 자기 인식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스태블리시먼트’라 불리는 기존 체제는 여전히 민주-공화 양당을 가리지 않고 전통적 미국의 자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상대편이 도덕적, 이념적 도전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상황이 오래 이어진다면 과거 냉전 시대를 장엄한 서사시로 만들었던 감정적 동기는 약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 냉전과 비교하자면 이 차이는 아주 명확하다. 자유세계의 상징이 된 서베를린에 대해 케네디는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레이건은 “고르비,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쳤다. 오늘날 홍콩에 대해 그 같은 상징적 행보를 취할 서방 세계의 지도자를 상상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반대편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더 적나라하다. 소련은 미국 흑인 차별을 고발하고 흑표당을 지원했으며, 영국과 이스라엘의 이집트에 대한 개입에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며 서방 ‘제국주의’ 진영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강변했다. 시진핑이나 다른 중국 지도자는 오히려 중동에서 미국이 안보 공공재를 제공하는 비용을 떠맡기를 바라고 있으며, 중국이 개입되는 상황 자체를 극히 꺼려한다. 그들은 BLM 운동을 가리키며 미국 사회의 병리적 모습을 비판하지만 그 내용은 소련이 흑표당과 민권운동을 지원까지 하며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선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중국은 BLM을 가리키며 그저 중국에서 그와 같은 혼란을 만들지 않는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할 따름이다.

신냉전의 본성, 시스템의 표준을 둘러싼 투쟁

그러나 냉전의 초점을 보편주의에 기반을 둔 사명감이 아닌 다른 쪽으로 맞추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냉전의 보편주의는 그것이 인류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정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발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이 패권국으로 떠오르면서 정답은 명확해졌는데, 바로 과학과 기술이었다. 여기에 20세기의 전쟁을 거치며 급속히 통합된 과학과 기술은 각국의 독특한 산업 표준과 맞물려 하나의 복합체, 혹은 생태계를 형성했다. 미국과 소련은 각종 신무기가 투입된 처절한 전쟁에서 독일과 일본을 제압하면서 자신들의 방식이 더 우월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냉전은 그런 의미에서 향후 누가 산업과 기술의 발전을 선도하고, 그 표준을 정하느냐를 둘러싼 결승전이나 다름없었다. 양국은 미생물과 인간 신체, 정밀기계와 자동차, 심해와 우주에 이르는 모든 면에서 경쟁했다. 이 경쟁은 부엌에 들어갈 가전제품에서 먼저 결판이 났다. 닉슨과 흐루쇼프의 유명한 ‘부엌 논쟁’ 이래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비재는 언제나 미국, 혹은 서유럽과 일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 표준을 만들어낼 전자 산업과 인터넷에서 소련이 사실상 철저하게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국은 최종 적인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글의 서두에서 본 대로, 미국이 주도한 정보화는 냉전 이후 세계를 완전히 바꿔버렸고, 소련 이후의 러시아는 미국이 설정한 표준을 따라가기 위해 고통스러운 이행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미국 중심의 기술 표준은 새로운 도전자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도전자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주도한 정보화에 누구보다 큰 혜택을 보았던 중국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씨앗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발전을 시작하던 1990년대부터 있기는 하였다. 공산당이 실시한 인터넷 검열 정책은 중국의 인터넷을 세계의 다른 인터넷과는 구별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연결을 통한 긍정적 외부효과가 핵심인 인터넷에서 이같이 분절된 인터넷을 추구하는 것은 효율성을 희생하고 정치적 안정을 추구한 조치로밖에 해석될 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 인터넷 유저의 거대함은 일종의 ‘거대 인트라넷’을 형성했고, 자체 논리로 움직이는 중국만의 신경제를 만들어냈다.

중국의 ‘붉은 인터넷’은 보편성 없는 거대한 인트라넷

중국 경제의 낮은 수준과 외부와 호환되지 않는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으로 인해 ‘붉은 인터넷’은 처음에는 조롱의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동통신이 보급되고 머신러닝이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를 열자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이 인구의 이점을 최대한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되자, 혁신적인 인공지능이나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갖춘 플랫폼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이 이전부터 있던 토착 인터넷 기업들은 이제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술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들의 행태를 모방하고 있었다. 틱톡, 핀두어두어, 메이퇀-디엔핑과 같이 중국에서 새롭게 창업되는 플랫폼 기업들은 중국의 독자적 환경에 맞춘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 이외의 국가 중에서는 독자적인 거대 플랫폼 ‘집단’을 갖춘 유일한 나라로 부상했다. 독자적 플랫폼 제국 건설과 맞물려 중국은 그 기반이 되는 반도체와 컴퓨팅 영역에서 국가 차원의 총력 투자를 기울였는데,여기엔 지적 재산권 도둑질 같은 노골적인 반칙 행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이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디지털 영역에서의 도전은 점점 위협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대일로라는 이름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로 묶으려는 중국의 노력은 자연스레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나 중국 전자 장비의 진출과 같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것이 탈냉전 세계화와 같은 포지티브섬 게임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다. 과거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낸 산업 표준과 규칙을 따르면서 성장했고, 표준 안에 속한 이들의 성장은 표준 공급자인 미국에도 이득이었다.

하지만 만약 중국이 아세안이나 중앙아시아로 자국의 디지털 플랫폼과 전자 장비를 수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중국만의 플랫폼과 인프라가 퍼지는 것은, 시스템 표준을 공급하는 미국의 지위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점력을 형성하는 플랫폼의 특성상, 독자적 메신저 기업이 없는 나라는, 미국의 왓츠앱이나 중국의 위챗 중 하나만 사용하지 둘 모두를 동등하게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챗과 틱톡의 부상은 미국의 왓츠앱과 페이스북으로 가야 하는 데이터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 데이터로 만들 수 있는 가치 또한 중국이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면, 현재의 미중 갈등은 과거 산업 표준을 둘러싼 미소 냉전의 모습을 재현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트럼프의 공격 목표는 화웨이, ZTE, 틱톡 등 중국 기술

따라서 2020년 이후에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중 관계는 이념적인 차원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요한 모습을 보일 것이나, 기술적인 차원에서는 격렬한 갈등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념이나 세계관 차원에서 미국에 도전을 제기하지 않고, 미국 또한 그런 도전에 점차 흥미를 잃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자국의 우월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기술과 산업의 표준을 발적으로 놓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격렬히 압박하는 목표물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화웨이, ZTE, 틱톡이라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정치적 힘과 경제적 유인을 조합하여 중국이 타국으로 기술 표준을 확대하려는 것을 막고, 중국이 자신들의 기술 표준을 활용하여 독자적인 표준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좌절시키려는 것이다.

기술과 산업에서 펼쳐질 제로섬 게임은, 이념적 제로섬 게임보다는 조용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양측에서 이득을 보고 있던 이들에게는 더욱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모두가 스티글리츠가 말한 미국의 정보 혁신과 중국의 도시화가 주도하던 세계화에 적응했었는데, 흔들리던 게임의 규칙이 아예 뒤바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 주어질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이 만들어낼 기술 표준으로 어떤 사회를 설계하려 할 것인가? 그리고, 기존 시스템에서 생길 것이 확실해진 빈자리를 한국이 어떤 식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임명묵

지구와에너지
(사)한반도평화에너지센터가 발행하는 신개념의 컨설팅형 입법정책 계간지 매거진 '지구와에너지' 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