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립마을과 참마을 운동 주민 동의 못 얻는 관 주도는 사절

권영걸 전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계원예술대학교 총장, 전 서울시 부시장

“주민-재생에너지전문가-도시계획가-공간디자이너-기업이 원탁에 앉아 한국형 그린 빌리지 모형을 정립하자. 전국적으로 시범 마을을 만들고, 에너지 자립형 주택에 대한 지원을 늘리며, 대안 에너지 보조금 제도를 활성화하자. 관련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이 함께 재생 가능 에너지 연구에 참여하고 연구 결과를 공유하여, 한국형 에너지 자립 마을공동체를 조성하자. 이들의 성공을 기반으로 에너지 자립마을에서 에너지 자립국가로 나아가자.”

세계 8위 에너지 소비국, 대한민국.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96%는 해외에서 들여오는 석유와 가스에서 얻는다. 우리나라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지수’는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생태 발자국 지수는 인간이 소비하고 사용하는 에너지, 식량, 주택, 도로 등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드는 총 비용을 땅 면적으로 환산해 표시한 것이다. 즉 인류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생태계로부터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한 사람당 요구되는 생태면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자연의 공급능력에 대한 지구 생태적 한계를 살피는 지표가 된다. 지수가 높을수록 그만큼 자연에 임팩트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생태파괴 지수’라 할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생태발자국지수는 1인당 4.05헥타르로 지구가 감당해 낼 수 있는 기준인 1.8헥타르를 크게 웃돈다. 한국인이 지금과 같은 생활 방식을 유지하려면 지구가 2.26개나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석유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대체 에너지 개발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타임>지, 에너지 절약은 제5의 에너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효율화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추산하였다. <타임>지도 에너지 개발보다 중요한 것이 에너지 절약이라고 정의하면서, 에너지 절약을 ‘제5의 에너지’라고 했다. 에너지 문제가 부각되면 사람들은 대체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 개발을 주로 얘기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에너지 절약임을 강조한 것이다. 보통 불을 제1의 에너지, 석유를 제2의 에너지, 원자력을 제3의 에너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차세대 에너지인 수소에너지와 태양에너지를 제4의 에너지로 꼽는다. <타임>은 나아가 에너지 절약을 ‘제5의 에너지’라고 강조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여러 형태의 방안을 제안했다.

세계 온실가스의 16%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에서 배출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친환경 주택을 건설하는 것은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집의 디자인은 모두 조건 없이 에너지 절약형 설계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리사이클링이 가능한 건축자재를 사용하고, 특별한 기계 장치를 쓰지 않고 건물 자체의 성능에 의해 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제어하는 패시브 시스템(passive system)을 채택해 에너지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설계하고,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에너지를 통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세계의 에너지 절약형 마을들

일본 이와테현(岩手縣)에 있는 ‘구즈마키(葛卷)’마을은 클린에너지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풍력, 태양광, 바이오가스 플랜트 같은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 시설을 활용해 166%의 에너지 자립도를 기록하고 있다. 15기의 풍력 발전기에서 5,400만 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이 생산된다. 태양광 발전소, 축산 분뇨를 활용해 열과 전기를 생산하는 바이오가스 플랜트, 목재를 활용한 바이오매스 플랜트도 가동되고 있다. 마을에서 쓰고 남은 에너지는 전력회사에 판매한다. 클린에너지를 통해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한편, 신재생에너지 마을로 유명해져 연간 50만명이 넘는 관광객과 생태마을 연구가들이 순례하는 명소가 되었다. 클린 에너지로 마을을 건강하게 하고, 지역경제를 부흥시킨 성공사례다.

독일 ‘메세슈타트 림(Messestadt Riem)’

독일의 ‘메세슈타트 림(Messestadt Riem)’은 뮌헨과 연계된 에너지 자족형 신도시로, 550여 헥타르의 면적 중 240여 헥타르가 녹지로 조성되어 있는 생태도시의 전범이다. 도시계획 단계부터 빗물을 재활용하는 생태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서 수돗물 사용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다. 메세슈타트 림 상업지구의 건물지붕은 모두 태양광 패널로 덮여있다. 특이한 것은 지열발전인데, 지하 2000m의 지열을 끌어올려 생산하는 전력으로 단지 내 전력 수요의 80%를 충당하고 있다. 승용차 통행은 적극 억제하고, 자전거와 녹도(綠道) 등 녹색교통 중심의 교통계획을 수립한 것도 생태도시를 만들어가는 힘이다.

단열 설비와 3중창으로 겨울 난방 불필요

런던 남쪽의 에너지 자립마을 ‘베딩톤 제로에너지단지(BedZED: 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는 선구적인 친환경 주택단지다. 70여 가구에 220여명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겨울철 난방이 거의 필요 없다. 벽 두께가 두껍고 철저한 단열설비와 3중창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일반 주택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1/10로 냉난방을 해결한다. 베드제드(BedZED) 설계의 기본 목표는 단지 내의 에너지 소모량만큼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는 것이었다. 주택들은 전반적으로 20도 기울어진 모습에 남향으로 지어졌고,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과 환기탑들이 설치되었다. 3중의 지붕 채광창은 들어온 일광을 오래 보존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주택건설에는 재생 목재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고, 그 외의 재료도 대부분 재생된 지역 생산품이다. 사용된 강철의 90%는 폐(廢)철로를 재생한 것이다. 주택은 6채 이상 연립되지 않고 공간을 비워 보행자와 자전거가 편히 다닐 수 있도록 했고, 자가용은 지역의 일정 경계까지만 들어올 수 있도록 제한했다. 주택마다 물과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고, 나무 조각을 태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도록 열과 전력을 결합하는 시설도 마련되어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교외의 수변생태도시 ‘함마르비 호스타드(Hammarby Sjostad)’도 대표적인 에너지 자립 주거지구이다. 이곳의 기본 에너지원은 쓰레기다. 자원회수 시설에서 쓰레기를 태운 에너지로 난방과 전력 문제를 해결한다. 대부분의 건축물 옥상에는 솔라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태양열을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가 다각도로 실용화되고 있다. 에너지가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택마다 3중 단열창과 자원절약형 실내 환기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건축의 외장재는 탄소배출이 없는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생태도시는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태도로 완성된다. 함마르비 호스타드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도보와 자전거 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생태주의자인 그들은 입는 옷도 CO2를 발생하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도시 전체의 건축물들은 저층을 원칙으로 하고, 동(棟)간 거리를 충분히 두어 저층부까지 깊숙이 햇빛이 들어가게 설계되어 있으며, 도시의 상당 면적이 생물군집 서식지(biotope)로 되어 있다.

한국형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자

생태 건축은 이미 우리 시대 건설 산업의 주류가 되어있다. 대안 에너지 도입에 대한 보조금 제도 활용, 다양한 에너지 자립주택과 자립마을의 조성 등을 국가적 의제로 삼아야할 때이다. 이미 20여년 전에 독일과 스웨덴이 합작해 디자인한 에너지 절약형 주택은 유럽지역에 1만호 넘게 지어졌고, 그 파급 효과는 범세계적이었는데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 지원제도 덕분이었다. 외국의 범례 속에는 한국형 에너지 자립주택 모델 정립에 참조할 대상이 많다. 먼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농촌마을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한국형 에너지 자립마을을 디자인하자.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 부처가 제휴하고 지자체와 협업하여 기술 및 연구결과의 공유를 통해 한국형 에너지 자립마을의 모형을 만들어 내자.

2010년 이후 전국 여러 곳에서 녹색마을이 시도되었지만, 아직까지 에너지 자립마을의 취지에 부합하고 전국의 마을과 도시가 모본으로 삼을만한 성공사례는 없다. 그들은 주택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녹색마을을 구현하는 사례에서부터 가축분뇨의 바이오매스를 에너지화하거나 삼림 바이오매스를 에너지로 바꾸는 사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열을 활용하여 원예 작물을 재배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이 관 주도의 추진 방식에서 문제점을 드러냈고 주민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했다.

정부는 지원만 할 뿐 간섭하지 말아야

정부는 재정지원과 전문기술 인력만 공급하고 주민과 지자체가 합의를 이루어 민간주도로 추진될 때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재생 에너지를 적극 활용해 농촌의 에너지 자립을 이루는 것이 기본 목표지만 한국형 에너지 자립마을의 지향점은 더 지역문화에 가까이 닿아 있어야 한다. 에너지 자립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인간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실질적인 고용창출과 소득증대가 이루어지도록 종합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립주택,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이 ‘참마을운동’과 연계되어야 한다. 참마을운동은 필자가 제안하는 새마을운동의 21세기적 버전이다.

“참마을운동은 농업이 단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라는 일차원적 인식에서 나아가, 마을공동체가 국토와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역할까지를 포괄하는 공동체 모형을 구축하는 활동이다. 전통미가 반영된 에너지 절감형 스마트 농촌주택을 디자인하고 작은 마을에 맞춤한 작은 타운홀, 작은 교회, 작은 절, 작은 학교, 특화된 작은 농원 등 서로의 체온이 느껴지고 정감이 있는 커뮤니티 시설들을 위한 신개념의 디자인이 필요하다. 참마을운동이 녹색 성장과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로 이어지도록 민-관-산-학이 함께 지혜를 모으자.”

참마을 주택은 자연발생적 취락구조와 전통미가 반영된 에너지 절감형 스마트 농촌주택으로 디자인하되, 지역마다 고유의 기후풍토적 요소와 자연색에 기반한 지역 색채 팔레트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적용해 나가야 한다. 참마을 주택개량 사업은 에코 투어리즘(Eco-tourism)과 접목하여 추진하되, 매뉴얼에 의해 양식화되고 표준화된 주택이 아니라 지역의 자연조건과 문화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주택이 그 자체로서 지역생태환경박물관과 같은 성격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메니티(amenity)를 자원화한 마을주택들을 통해 주민들의 삶 자체를 지역유산으로 디자인해 나가도록 한다. 이러한 전원형의 주거공간들은 마을관광활동과 연계되어 교육, 체험, 외식 등 농가가 수행하는 활동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이를 통해 전원 투어리즘(Country tourism)이라는 새로운 서비스 시장이 형성되도록 한다.

에너지는 자원, 자립은 이상, 마을은 실천 공간

‘주민-재생에너지전문가-도시계획가-공무원-기업’이 손잡고 함께 한국형 그린 빌리지를 만들어가는 생태적, 경제적, 문화적 실험에서 디자인은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에너지 자립마을은 주택 신축과 낡은 집 리모델링에 반드시 에너지 절약 설계기법과 공사기준을 적용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가구당 에너지 소비를 기존 수준에서 60-70% 줄일 수 있도록 ‘에너지 경제 디자인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적용해나가야 한다. 집집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냉난방을 해결하는 패시브 하우스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제공하자. 마을 주민이 에너지가 새나가는 경로를 스스로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나가며, 타운홀 미팅을 통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집집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전자제품만을 사용하고 저효율 등(燈)기구를 수명이 반영구적인 고효율 등기구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를 차지하는 대기전력을 철저히 차단하고, 대기모드의 장치를 전면 새로 디자인하자.

에너지는 자원, 자립은 이상, 마을은 실천의 공간. 참마을(Charm village)은 실천의 완성형이며 에너지 자립 도시(Energy self-sufficient village), 에너지 자립형 국가는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이자 국민들의 원대한 목표이다. 우선 전국 50곳에 에너지 자립형 ‘참마을’을 조성하고, 이들의 성공을 기반으로 에너지 자립 도시, 나아가 에너지 자립 국가를 건설하자. 에너지 자립 마을은 일견 단선적인 ‘자원운동’으로 보이지만, 국토 환경과 문화를 보존하고 지역경제를 발전시켜 국민들로 하여금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 ‘문화운동’인 것이다.

– 권영걸

지구와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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